"아픈 아이들 보듬는 것, 우리 사회의 몫"
▲ 문경식 ㈔난치병아동돕기운동본부·희망세움터 상임대표가 희귀병 아이들과 함께 동물농장을 찾아 체험활동을 하고 있다.
▲ 문경식 ㈔난치병아동돕기운동본부·희망세움터 상임대표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희귀병 아동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웃의 따뜻한 관심으로 건강하게 성장한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어엿한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는 모습을 보면 힘들었던 지난날을 보상받은 듯 기쁩니다."

문경식 ㈔난치병아동돕기운동본부·희망세움터(이사장 국상표) 상임대표(54)는 난치병 아동들을 돌봐온 15년 세월을 한 문장으로 다듬었지만, 그의 짙은 목소리에서 거칠고 굴곡진 삶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난치병 아이들을 만나다
문 대표는 2002년부터 난치병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여러 사업을 펼쳐오고 있다.

그는 1990년대 초 최주상 목사(2008년 작고)가 이끈 한무리 교회를 만나면서 지역사회 봉사 활동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뎠다.

당시 그곳은 노동자와 빈민들이 쉬어가고 공부하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보금자리였다. 그는 오전엔 공장에서 일하고 오후엔 한무리 교회 부설 '나눔의 집' 사무국에서 일하며 아이들 공부를 지도했다. 이 지역 최초의 공부방이었다.

노동자들과 함께 했던 나눔의 집은 1998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빠져나가면서 빈곤지역 아동, 주민의 생활지원으로 활동을 전환했다.

문 대표는 이 무렵 안양지역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을 처음 시작했다. 초등학생 고사리 손이 내어 준 쌀 한 줌부터 기업의 통 큰 기부까지 이어지면서 운동이 확산해갔다.

문 대표는 쌀 나누기 운동을 넘어 지역을 위해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 나섰다.

그는 몇몇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논의 끝에 우리 주변에 희귀병을 앓는 아이들과 가정이 의외로 많고, 이웃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양·군포·의왕·과천을 표본 조사해보니 16명의 아이가 있었다. 아이들이 국가와 지방정부는 물론 우리 사회에서조차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인 사실을 알게 됐다.

#난치병 아이들 보금자리 '희망세움터'
그동안 문 대표의 손길을 거친 희귀병 아이들은 500여명에 이른다.

문 대표는 생명보험재단의 공모를 통해 난치병 아이들의 보금자리인 희귀질환아동종합케어센터를 희망세움터 내에 2010년 전국 최초로 세웠다. 그는 공모를 한 재단을 찾아가 무조건 사업비를 달라고 떼(?)를 썼고, 재단에서 공모액 3억원 중 절반을 쾌척하면서 센터를 세울 수 있었다.

센터는 희귀난치성질환아동 케어는 것은 물론 그 형제자매의 교육과 복지지원 등 종합적인 도움을 주는 장애통합지역 아동센터다.

▲보호프로그램 ▲교육프로그램 ▲문화프로그램 ▲정서프로그램 등 4개의 커리큘럼을 주요 사업으로 진행하며 사회통합형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또한 ▲야간보건사업(장애·비장애 아동 및 청소년 돌봄서비스) ▲따뜻한둥지(급식·간식· 안전귀가 지원 등) ▲어깨동무(문화체험, 미술심리치료, 일상생활 기술훈련 등) ▲희망세움교실(주요과목 중심의 학습지도 등)도 운영한다.

이와 함께 토요프로그램 운영으로 다채로운 체험과 활동을 통한 사회적응기술 촉진, 참여 아동 간의 상호 지지 체계 구축, 멘토와 활동을 통한 정서적 지지 체계 구축, 아동의 보육 서비스 제공 등에도 힘쓰고 있다.

현재 '희망세움터'에는 난치성장애아동 104명을 비롯해 150여명이 등록돼 치료비와 생활비 등 각종 지원을 받고 있다. 여기엔 환우 형제·자매 6명도 포함돼 있다.

희귀병은 근육병, 백혈병, 자폐성장애 등 150여종으로 분류(정부)된다. 하지만 이 데이터에는 병명과 치료방법도 알기 어려운 희귀병 850여종이 빠져 있다. 국제적으로 분류된 희귀병은 1000여종이나 된다.

#"난치병 아이들 정부가 보듬어야"
문 대표는 질병·장애·경제적 어려움·사회적 소외 등 4중고를 겪는 난치병 아이들 문제를 지자체와 정부가 나서 적극 케어하고 제도권 내로 편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난치병 아이는 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과 기업 등 지역에서 많은 도움을 받지만, 중장기적인 면에서 접근해야 하기에 지역에서 떠안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문 대표는 희귀 질병에 대한 치료를 지원하다 보니 심리재활 치료의 필요성도 알게 되면서 언어, 음악 및 심리미술치료 등을 위한 '두리망재활치료센터' 공간을 마련, 개소했다.

또 아동에서 청소년, 청년으로 성장하는데 당사자들을 돌봐줄 장소나 프로그램이 없는 현실의 벽에 부딪치기도 했다.

결국, 부모들과 함께 희망세움터 바로 옆에 협동조합 카페 문을 열고, 올해 3월에는 '성인주간보호센터'의 문도 열었다. 카페에는 성인이 된 난치병 아이가 근무하면서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에 매진하고 있다.

문 대표는 "난치병 또는 희귀질환 아이들을 돌보는 데에는 치료비 등 재정적 지원 외에도 진학, 교육 등 여러 면에서 한계가 있다"며 "국가가 나서 치료 및 지원, 교육, 사회진출 등 체계적인 대책을 세워 아이들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그저 난치병 아동을 돕는다'라는 생각은 그들을 대하는 옳은 출발이 아니다. 누가 돕고 도움을 받는 문제가 아닌 우리사회가 나서 책임져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며 "국가 또는 지자체가 적극 나서 희귀질환 및 장애지역아동센터를 전국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안과 나눔' 공간 마련 희망
문 대표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순탄하지 않은 삶을 택했다.

1964년 전남 장흥에서 면장 아들로 태어난 문 대표는 학생시절 남부러울 게 없었다.

1980년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5·18 민주화운동을 계기로 조선대에 입학해 교지 '민주조선' 편집장을 맡은 후 고(故) 이철규 열사와 함께 학생운동 선봉에 섰다가 옥고를 치렀다.

그는 정치외교학 전공과는 무관한 건강관리센터 원무과장을 맡으면서 한 때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다.이후 안양의 공장에서 일하기도, 또 공장을 경영하기도 했던 그는 한무리 교회를 만나면서 삶의 노선이 바뀌는 계기가 됐다.

문 대표는 "아픈 아동을 돌보는 일이 쉽지 않은 탓에 2002년 당시 부모님들은 제가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떠날 것이라고 장담했었다"며 "그 만큼 난치병 아동의 케어가 쉽지 않다는 뜻으로, 결국 사회구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작은 바람도 피력했다.

그는 "뜻을 같이 하는 지역 후배들과 함께 '대안과 나눔'이라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경직되지 않은 방향으로 지역사회 운동 방식 패러다임을 전환, 지쳐있는 활동가들의 쉼터와 사랑방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바랐다.
문 대표는 500여명의 후원자와 지역사회, 희망세움터 가족에게도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글·사진 정재석 기자 fugoo@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