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한글날이 돌아오면 차마 웃을 수만은 없는 에피소드가 발생하곤 한다. '한글날을 맞아' 외국어를 과도한 한국어로 바꿔 쓰자는 제안을 예로 들 수 있다. 한국어를 사랑하자는 의도이겠으나 한국어를 사랑하는 일이란 게 어디 365일 중 364일 동안 사용하지 않은(않을) 한국어를 사용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일까 싶다.

최근 교육부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있는 외국어와 번역투 문장들을 우리말 표현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가령 '나이프'라는 단어를 칼 혹은 주걱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교과서에서 '나이프'란 단어는 끝이 둥글고 납작한 형태의 작은 칼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나이프는 문자 그대로만 보자면 '칼'로 번역할 수 있겠지만 칼의 형태에 따른 용례를 고려하건대 '나이프'를 사용하는 편이 더 적절해 보인다.

아시다시피 언어는 사회적 산물이다. 특정한 용도로 사용되는 일정한 형태의 칼을 '나이프'라고 지칭하고 있고, 그것이 '칼'과의 변별점을 충분히 주고 있다면 이것을 교과서에서 굳이 수정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국어 순화 작업은 '나이프'를 고치는 일보다는 다른 측면에서 수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 기사에서는 국립 국어원에 등재된 신조어 중 '혐오' 정서를 다분히 반영한 단어들이 무분별하게 기재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대체로 남성을 긍정하고 여성을 부정 혹은 비주체화 하는 형태의 'OO남', 'OO녀'와 같은 단어가 그러하다. 'OO녀'의 경우 언론은 물론이고 일상의 영역에서 여성을 전시(展示)하고 성적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어서 문제시되어왔다. 김치녀, 청순녀, 베이글녀 등 더 언급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이런 식의 조어는 사회적으로 마땅히 문제 삼아야 한다. 언어란 곧 인간(집단) 사이에 공유되는 수단이자 그것을 사용하는 자의 사유(思惟)를 구성한다. 혐오를 내재한 언어를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염려하지 않을 때 혐오가 일상화되지 않을지를 우려해야 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