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추구와 권리 지키는 필수 도구는 자치"
▲ 지역 언론학계의 대표적 학자인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지난 21일 인천 남구청에서 개최된 자치분권대학에서 '자치분권과 언론' 강연을 하고 있다.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가 실체를 드러낸 이후, 모든 언론들은 관련 보도를 봇물처럼 쏟아냈다. 이를 통해 숨겨졌던 온갖 불법 비위와 상상을 초월하는 기행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를 본 시민들은 분노를 넘어 허탈감에 빠졌고, 성난 군중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마침내 박근혜 정권은 광화문을 가득 메운 촛불의 물결 속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촛불 혁명 1주년을 맞이하는 내년 6월이면 지역권력의 향배를 결정하는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선거 결과에 따라 향후 정국은 큰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순실 게이트를 중앙언론이 주도했다면, 내년 지방선거는 지역 언론이 그 역할을 맡게 된다. 이 때문에 지역 언론의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고, 주민들의 관심도 달아 오르고 있다. 대표적 지역 언론 학자인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장호순 교수가 지난 21일 인천을 찾았다. 이날 오후 인천 남구 자치분권대학이 주최하는 '자치분권과 언론' 강의를 진행했다. 그는 강연을 통해 '지방자치 실현과 지역 언론의 역할'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 이주 시대는 끝났다

장 교수는 자치분권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를 '정착의 시대'가 도래한데서 찾는다. 지난 100년의 '이주 시대'가 끝나고, '태어나 자란 곳에서 정착하는 시기'로 회귀했다는 주장이다. 이주의 시기는 국가경제가 농어업에서 제조업으로 재편되던 1960년대에 본격화됐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수도권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더 이상의 이주는 불가능해졌다. 이는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정착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장 교수는 "비로소 우리 사회가 정상적으로 회귀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다른 곳을 보지 말고, 내가 있는 곳을 살기 좋게 만들 것"을 제안한다. 이것이 '저성장의 시대, 정착의 시대에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 자치와 참여

그는 "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고 권리를 지키는 필수적인 도구가 바로 자치"라고 설명한다.

이를 지역단위로 행사하는 것이 바로 지방자치다. 지방자치는 권력의 남용과 독재정치의 출현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민주주의 핵심인 권력을 각 지방으로 분산하고, 지방끼리 서로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수 개인의 권력독점 뿐 아니라 특정지역의 권력 집중도 차단한다.

'지방자치'를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참여다. 참여를 위해서는 네 단계로 이뤄지는 선행요건이 동반되어야 한다. 정보습득―관심―공감―행동으로 이어지는 선행요건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선거에 참여하려면 먼저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습득해야 한다. 이어 관심을 갖고 공감하는 후보를 결정한 뒤 투표에 참여하는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 자치와 참여를 가로 막는 지역 언론

이 중 첫 단계인 정보습득은 지역 언론의 현안 보도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지역 언론은 현안 보도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주민들은 충실한 보도를 게을리 하는 지역 언론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지역 언론은 이를 핑계로 신문을 적당히 만들고, 주민들은 외면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 것이다.

장 교수는 "지역주민들이 자치와 참여의 첫 단계인 지역 현안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지금과 같은 부실한 지방언론으로는, 지방분권의 실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꼬집는다.

● 지역 언론의 실태

지역 언론의 실태는 기자들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자료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난다.

광주·전남기자협회는 지난 2015년 협회 소속 지역기자들을 상대로 의식조사를 실시해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들의 절반 가량은 지역 언론이 고쳐야 할 관행으로 감시·비판약화(46%)를 꼽았다. 기자들은 특히 이런 관행의 원인이 '홍보성 기사(42.7%), '지자체 협찬(37.9%)'이라고 스스로 인정했다.

한국광고주협회가 조사한 신문구독률 조사는 더 충격적이다. 특히 수도권의 지역 신문은 말 그대로 고사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인천지역 조사에서 유일하게 대상에 오른 인천일보의 구독률은 0.7%에 그쳤다.

경기지역 조사에서는 지역 신문이 단 한곳도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부산일보는 16.5%, 대구의 매일신문은 12.1%로 그 지역에서 가장 높은 구독률을 보였다.

비록 이 조사가 2006년에 시행된 것이지만, 이런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정치와 지역 언론

민주주의 선거는 대부분 지역단위로 시행된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지역 언론이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선거와 후보에 대한 세밀한 정보는 지역 언론을 통해서만 입수가 가능하다. 특히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는 전국단위 언론의 기능이 크게 약화된다.

한정된 지면과 방송 시간으로는 수많은 전국의 후보자를 소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 언론이 지역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에 대해 소상하게 알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거기간이 아닌 때에도 정치인과 유권자들의 소통을 잇는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공약을 제대로 지키는지, 주민들의 의사를 대변하는지를 판단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활동상을 소상히 소개하는 지역 언론을 찾기는 쉽지 않다.

유권자들이 묻고 따지고 싶은 말을 전하고, 그 대답을 알려주는 '민의의 대변자' 역할도 외면하고 있다.

● 그래도 희망은 있다

장 교수는 "지역에 충실한 지역 언론의 시장성은 매우 안정적"이라고 평가한다.

지방자치가 확대되면서 지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렌 버핏이 미국의 작은 지역신문에 투자한 것을 그 증거로 제시한다.
장 교수는 "현재 지역 언론이 갖고 있는 문제는 치유가 가능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지역 언론인들은 좋은 신문을 만드는데 더욱 힘을 쏟고, 주민들은 지역 언론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이 지방자치의 정착을 앞당기는 길"이라고 역설한다.


/글·사진 정찬흥 기자 report6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