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포니.
포니1은 한국 최초로 개발된 자동차 모델로 생산원년인 1975년 제품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을 등록문화재 제553호로 지정했다.

여주에서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데 아직 운행도 가능하다.

포니의 탄생으로 한국은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자체 개발한 자동차 모델을 보유한 나라가 됐고, 외국에 승용차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축복 속에 태어난 건 아니었다.

증기자동차가 처음 모습을 나타내자 생계를 걱정한 영구 마부들은 격렬히 반대했다.

'붉은 깃발법'을 만들어 시속 6.4km이상 달리지 못하게 했고, 말이 놀란다는 이유로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55m 앞에서 달리게 했다.

하지만 이 결과 영국의 유능한 기술자들은 모두 독일로 떠났고 독일이 자동차 강국이 됐다.
1970년대에는 택시 운전사와 버스 안내양(승객을 밀어 넣은 후 '오라이'로 버스를 출발시키던 누나)이 인기 직업이었다.

차를 탄다는 것 자체가 가슴 뛰는 오락이었고 부와 성공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그랜저에 선물을 가득 싣고 고향에 내려가는 것은 모든 이의 꿈이었다.

1980년대에는 자동차가 대중화됐고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자동차 생산국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노사 간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고, 오렌지족·야타족은 고급차를 인스턴트 연애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 자동차는 세계 각국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판매가 급증했고, '차화정'(자동차, 화학, 정유)은 우리 증시를 이끌어나갔다.

하지만 2017년 지금, 자동차 시장은 밝지 않다.

현대차의 중국 내 판매량은 반토막 났고, 기술 인수를 끝낸 중국 회사는 사드(THAAD)를 빌미로 합자 관계를 끝내려고 한다.

기아차의 통상임금 판결로 인건비가 증가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전기차와 자율주행 등 4차 산업혁명에 달려있다.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자리는 과감히 넘겨주고, 우수한 인재와 기업이 마음껏 연구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선구자는 굴을 얻지만 뒤따르자는 굴 껍데기만 얻는 법(앤드류 카네기)이니까 말이다.

/김진효 경기도 문화유산관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