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지문을 간직한 채 근현대사를 비추다
▲ 팔미도는 인천항 남쪽 15.7㎞ 지점에 있다. 두 개의 섬이 마치 여덟 팔(八)자처럼 뻗어내린 꼬리와 같다고 해서 '팔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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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미도 등대가 1903년 6월1일 드넓은 바다를 향해 빛을 비춘다. 개항 이후 외국선박들이 제물포로 진입하는 길목에서 자주 해난사고를 당하자, 일본은 서양식 항로표지 시설 설치를 요구한다. 인천 앞바다 좁은 협로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어서다.

결국 대한제국은 외·내항을 구분하는 분기점 역할을 하는 팔미도에 등대를 세운다. 우리의 손으로 만든 개화의 불꽃이었다. 근대 제국들이 선진 선박 건조술을 바탕으로 인천 앞바다를 장악했기에, 제국의 배를 인도하는 '제국의 불빛'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팔미도 등대에서는 '낭만의 상징'보다는 100여년 전에 영국, 일본, 한국으로 이어지는 제국의 시스템이 작동한 파장을 읽어낼 수 있다. 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된 팔미도 등대는 2003년 설치 100주년을 맞아 그 임무를 마치고 근대문화유산으로 흑백사진처럼 남아 있다. 열강의 침투와 일제의 수난을 이겨내고, 6·25 전쟁의 전황을 역전시킨 구국의 불빛이라는 시간의 지문을 간직한 채 인천의 대표 관광자원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100년 임무 마친 팔미도 등대=팔미도는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1시간 남짓 가면 나온다. 선착장에 도착하자, 사주로 연결된 팔(八)자처럼 보이는 두개의 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팔미도등대는 선착장에서 곧장 뻗어있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니, 해발 60m 나지막한 섬 정상에 서 있었다. 1903년 점등한 한국 최초의 근대식 등대다. 10초에 한 번씩 백색 섬광을 번쩍거리며, 인천항을 드나드는 선박의 밤바다를 인도하는 푯대였다.

국력이 약할 때는 적들의 침략과 약탈을 안내해 주는 유도등이었고, 해양대국을 꿈꿀 때는 근현대로 나아가는 희망의 등불이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놓인 6·25 전쟁을 승리로 이끈 구원의 빛이기도 했다. 풍운의 백년 세월을 목격하며, 버텨 낸 팔미도 등대는 오늘날 근대문화유산으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등대를 휘감고 있는 섬 둘레길을 걸었다. 서어나무와 소사나무 군락지 사이로 불어오는 숲속 바람결에는 배릿한 바다 냄새가 묻어난다. 인천출신 극작가 함세덕 작가가 <해연(海燕, 바다제비)>에서 "사면일대 암초에 둘러싸인 깍아 세운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서해안의 어느 조그만 섬. 암반과 모래사장, 우변 섬 일각에 화강함 석벽으로 외곽을 둘러싸인 석회로 칠한 흰 벽의 등대가 용립해 있다"고 묘사한 팔미도를 떠올렸다.
 
팔미도는 인천항에서 남쪽으로 15.7㎞ 떨어져 있다. 인천시 중구 무의동 산 375번지, 해안선 1.4㎞, 면적 0.076㎢ 조그만 섬이다. 팔미도는 조선왕조실록에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익명의 섬이며, 고산자 김정호의 '청구도'에는 팔산(八山) 등으로 불렸다. 인천사람들에게는 '팔미귀선(八尾歸船)', 즉 낙조에 팔미도를 돌아드는 범선의 자취가 아름다워 인천팔경의 하나로 꼽는다.
 
팔미도는 서남해에서 인천으로 들어오는 길목이다보니, 지정학적으로 해상교통 흐름의 중심 기능을 담당했다. 당시 우리나라를 넘보던 열강은 다투어 이양선을 몰고와 개항장 인천을 찾았다. 인천을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거점으로 삼아 각종 이권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획책이었다.
 
가장 먼저 일본이 눈독을 들였다. 인천항 개항으로 선박 운항이 빈번해졌다. 이에 등대의 효용성이 대두된 것이다. 우리정부는 일본의 강권에 못이겨 1902년 인천에 해관등대국을 설치하고 그해 팔미도, 소월미도, 북장자서, 백암 등대 건설에 착수해 이듬해에 각각 완공, 점등(點燈)한다. 대리석과 콘크리트를 섞어 세운 팔미도 등대는 높이 7.9m, 지름 약 2m이며, 10㎞ 밖에서도 불빛을 식별할 수 있다. 처음에는 석유등을 사용하다 시대발전에 따라 전기등을 사용했다. 일제와 서구열강은 북장자서와 팔미도를 길잡이로 삼아서 인천항으로 속속 진입했다. 대항해 시대 이래로 서세동점하던 제국의 파도가 동아시아로 밀려든 것이다.
 
팔미도 등대는 1903~2003년까지 100년 동안 등대 불빛을 밝혔다. 인천항의 길목에서 선박의 안전항해를 책임지는 자기 역할을 다했다. 이제 은퇴하고 새 등대에게 그 자리를 내준 팔미도 옛 등대는 여전히 근대 문화공간의 상징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금단의 섬, 팔미도가 2009년 개방되면서 빼어난 해변경관과 함께 등대는 관광객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새 팔미도 등대는 위성항법보정시스템(GDPS) 기준국 등의 시설과 첨단 장비를 갖춘 현대식 등대로 2003년 세워졌다. 등명기는 국내기술로 개발된 프리즘렌즈 대형회전식 등명기로 10초에 한번씩 백색 섬광을 번쩍거리며, 50㎞까지 비춘다.
 
인천은 한국 최초의 등대라는 해양문화유적을 갖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최초 국립등대박물관은 경북 포항에 있다. 인천은 해양문화의 발신지였는데도, 해양역사의 기억을 담아낼 어떤 공간도 없다. 이는 지역문화유산을 지켜내고 발전시켜내고자 하는 고민이 없었다는 반증이다. 이제라도 인천은 지난날을 성찰하고 해양문화의 가치를 재발견해야겠다.
 
조우성 인천시립박물관장은 "팔미도 등대는 세계 각국의 문화와 모습을 인천 앞바다로 안내하는 역할과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인천의 눈이었다"며 "단절된 해양성을 회복하고 인천의 바다주권 회복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팔미도=글·사진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혀라='1950년 9월15일 0시에 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혀라.' 1950년 9월14일 저녁 7시, 맥아더 사령관이 작전명령을 내린다. 암호명, '크로마이트(Chromite)'. 인천상륙작전(Operation Chromite) 작전계획 100-B를 감행한다.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이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오자, 맥아더 사령관은 교착상태에 빠진 전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야간 상륙작전을 꺼내 든다. 연합군 함대가 인천항으로 진입하는 데에는 작전상 전제조건이 있었다. 바로 항로를 밝혀줄 팔미도 등대 불빛이었다. 한미연합특공대가 5시간 치열한 전투끝에 인민군이 점령한 팔미도를 탈환, 15일 0시12분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빛을 밝힌다. 이 작전의 성공은 한국의 '캘로(KLO)' 특공대와 미 해군 클라크 대위가 숨은 공로자다.
 
예정시간을 조금 넘겨 망원경에 등대 불빛이 들어오자, 맥아더 장군은 인천만 외항 멀리에 집결한 261척의 유엔군 함대에 발진명령을 내린다. 연합함대는 팔미도 등대 불빛에 의존해 1차 목표지점인 Green Beach(월미도)에 안전하게 상륙한다. 이어 Red Beach(동구 만석동)과 Blue Beach(남구 용현5동)을 점령하고 인천 해안교두보를 확보한다. 한강을 너머 서울을 탈환하고, 전황을 역전시키는 전기를 마련한 작전이었다.
 
팔미도등대 불빛은 인천바다의 조수간만의 차이 등으로 성공 확률이 5000분의 1에 불과한 'Chromite' 작전의 성공을 알리는 신호였다. 6·25전쟁을 승리로 이끈 대반전의 등불이었다.

/팔미도=글·사진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등대=등대는 외딴섬 단애의 곶에 세워져 흰색·빨간색·노란색 빛을 반짝이며,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밤바다를 지킨다. 광달 거리도 최대 80㎞까지 비춘다. 등대는 등광이나 음향, 전파 등을 이용해 배를 안전하게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바다에서 어둠과 안개 등으로 길을 잃은 배들의 길잡이가 되어 준다.
 
등대의 불빛은 원시 형태의 장작불에서 석유, 가스, 전기에 이어 최근에는 발광다이오드(LED) 등명기를 사용하고 있다. 등대는 낭만의 상징이면서도 핵심 장치인 등명기(燈明器대)에는 선진 광학과 과학의 원리가 숨겨져 있다. 기원은 BC280년 지중해의 알렉산드리아항 입구 팔로스섬의 등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에는 나무나 송진을 태워서 불을 밝혔다. 등대를 지키는 등대원은 안개가 자욱한 주간에는 무신호(霧信號)를 취명해 등대의 위치를 알리고, 밤이 되면 등대불을 밝혀 항해하는 선박의 안전을 지켜야 했다.
 
서해바다에는 인천항 인근 팔미도 등대를 비롯해 중국과 압록강으로 가는 장산곶 길목 소청도·연평도 등대, 중국 청도의 닭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어청도 등대를 비롯해서 홍도·목포구·영산포·하조도·죽도·가사도 등대 등이 있다.

/팔미도=글·사진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