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숲으로 덮여있던 비무장지대 '장단역'의 플랫폼이 옛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서 수많은 전쟁 잔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모든 것들은 전쟁이 남긴 비극의 산물이었다. 플랫폼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머리에 짐을 가득 올려놓은 아주머니가 두 눈에 아른거렸다. 플랫폼 끝자락에는 서울로 향하던 기차가 화통만 쓰러질 듯 총탄구멍이 벌집처럼 뚫린 채로 벌겋게 녹슬어가고 있었다.

특히 장단역에서 발굴된 '경량통표용'은 일제 치하에서 '경의선'을 건설하면서 장단역에 설치했던 것이다. 동판에는 '소화16년(1941년) 3월20일, 소화20년 (1945년 )8월 철도국 수리'라고 적혀있었으며 그 글씨를 바라보는 순간 섬뜩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동족끼리의 전쟁으로 인해 반세기가 넘도록 땅속에 묻혀있던 일제 침략의 역사 증거물이었다.

또한 비무장지대 장단역 근처의 옛'장단면사무소'건물은 포격으로 부서져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담쟁이 넝쿨로 뒤엉켜 음산하게 서있었다. 시멘트 기둥 곳곳에는 총탄 구멍이 숭숭 뚫려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었음을 쉽게 알 수가 있었다.

면사무소 바로 앞으로 개성으로 가는 황톳길도로가 휘어져 있었다. 도로 양옆으로는 지뢰표지판이 촘촘히 이어져 있었으며 무성한 풀숲에 숨어서 울고 있는 새소리와 바람소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그 도로에는 이따금씩 군용트럭이 무장을 한 병사들을 태우고 흙먼지를 날리며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비무장지대의 장단면사무소와 장단역의 규모를 볼 때 전쟁이 없었다면 큰 도시로 변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의선복원공사건설단'에 투입된 병사들은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전쟁의 잔해물 들을 가지런히 쌓아놓았다. 그 병사들은 순간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나는 땅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전쟁의 잔해물들을 바라보면서 전쟁의 참혹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장단면사무소 주위는 집터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도로 양 옆으로 빨간 지뢰표지판이 끝없이 이어져있었으며 그곳에는 한 발자국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장단면사무소에서 북한의 개성 쪽 도로 우측으로 '장단금융조합'건물도 포격으로 부서져 하부구조물만 숲 속에 음산하게 묻혀있었다. 도로 옆 지뢰밭에는 기와조각, 항아리조각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전쟁 이전에 이곳에서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최병관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