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취·오염 해결위한 '매립' 결정에 시민모임 '보전 필요성 홍보' 행보
▲ 북성포구에서 바라보는 대성목재 쪽 석양이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인천 중구의 북성포구는 도시를 가로질러 들어오는 바닷길이다. 주변은 온통 공장지대와 상가, 아파트가 둘러싸고 있지만 물이 빠지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갯벌이 속살을 드러낸다. 그 위로 철새와 갈매기들이 날고 갯벌 위에 내려 앉아 먹이를 고른다.

물이 들어올 때면 먼 바다로 나갔던 고깃배들이 하나 둘씩 들어와 바다 내음을 뭍으로 풀어낸다. 알음알음 이 곳을 찾은 시민들은 육지로 올라온 생선들을 장바구니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석양이 질 때는 서해 바다로 넘어가는 노을을 카메라에 담는 손길들이 곳곳에서 분주하다. 경인선 종착지인 인천역에서 잠깐의 도보로 찾을 수 있는 어시장과 갯벌이 바로 북성포구다.

주변에는 일제강점기의 유산들이 도처에 즐비하다. 제국주의에 희생당한 강제징용의 비극적인 흔적들이다. 당시의 모습들은 이 곳을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에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런 갯벌과 바닷길, 어시장, 강제징용의 역사, 문학작품의 배경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북성포구를 메꿔 육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생겨나는 악취와 바다오염을 흙으로 덮어서 없애겠다는 발상이다. 그 위에는 상가를 짓고 어시장을 세우고, 주차장을 만들어 관광지로 개발한다고 한다.

이 곳 주민들이 북성포구 매립을 요구한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던 악취 문제도 한 번에 해결하고, 주변 개발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뒤늦게 생태계와 산업유산 보전을 주장하며 매립을 반대하고 나서고 있지만 힘이 달리는 모양새다. 며칠 전에는 매립을 저지하기 위한 감사청구도 무산되고 말았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북성포구를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곳이 주변 거주민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천시민, 더 나가 나라 전체의 소중한 자산이라는 이유에서다.

인천북성포구살리기시민모임은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매주 토요일 오후 포구 주변을 걷는 도보 기행을 펼치고 있다. 시민들에게 북성포구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알리고 매립의 부당성을 홍보하기 위해서다.
지난 5일 도시자원디자인연구소 장회숙 대표와 함께 북성포구 일대를 둘러봤다. 오후 5시부터 해질 녘까지 계속된 이번 기행을 통해 이 곳의 역사성과 보전의 필요성을 짚어봤다.

● 북성포구의 역사성

북성포구는 오랜 역사를 가진 어촌이었다.

근세 들어서는 고종실록과 백범일지 등에서도 이름을 찾을 수 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물산이 풍부한 어항으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포구 입구에 자리 잡은 파시는 명성이 자자하다. 개항기에는 외국배들의 왕래도 빈번했던 모양이다. 덕분에 포구는 더욱 활황을 누렸다.

장 대표는 "러시아 건축가 사바친이 올림포스 호텔 옆에 선착장을 지으면서 외국배의 출항지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한다.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탑이 있는 자리다.

● 일제 강점기 산업시설

북성포구 주변은 인천역이 들어서면서 일본 제국주의의 산업시설의 요충으로 변모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비누를 생산한 애경공장을 비롯해 수많은 생산시설이 들어섰다.

이중 일진전기 등의 일부 건물은 여전히 과거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동양방적과 사이토 정미소, 다카스키 양조장, 판유리, 조선기계제작소, 일진전기, 조선이연주식회사가 대표적이다. 동양방적은 이후 동일방직으로 이름을 바꿔 운영을 계속하다 얼마 전 공장을 동남아로 이전했다. 또한 사이토 정미소는 동아제분으로, 시바우라 전기는 일진전기, 조선이연은 현대제철로 바뀌며 명맥을 유지했다.

● 문학작품 속 북성포구 일대

1930년대 작품인 현덕(본명·현경윤)의 '남생이'는 노마라는 어린 주인공의 성장소설이다. 당시 현덕은 인천에 거주하며 소설을 썼는데, 남생이 배경이 바로 북성포구 일대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노마와 들병이 생활을 했던 어머니의 삶들이 북성포구 주변에서 섬세하게 묘사했다.

같은 시기에 나온 강경애의 '인간문제'는 동일방직 여공의 삶과 죽음을 그려낸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 치하의 참상을 고발한 이 작품 속에는 여공들이 월미도로 봄 소풍을 가는 장면이나 동일방직 굴뚝 공사현장 등 당시 상황이 사실감 넘치게 표현되어 있다.

1970년대 한국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다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일명 난쏘공)'도 이 곳을 배경으로 삼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은강'이 인천이고 '기계도시'로 설명하는 곳이 만석동 일대 공장지대다.

● 보존과 매립의 갈림길

매립을 반대하는 인천북성포구살리기시민모임은 가장 먼저 생태계 보전을 앞세운다. 도심 가운데로 들어오는 인천의 유일한 갯골을 무작정 덮는 것은 반환경적 처사라는 주장이다.

이곳에서 발생하는 악취문제는 유입되는 오수를 별도로 모아 처리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갯벌을 살리고 주변을 정비해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변의 일제강점기 산업유산 보전도 큰 문제다.

장 대표는 "북성포구가 매립되면 일대가 모두 개발돼 현재 남아있는 일제강점기의 산업시설이 모두 사라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강제징용의 역사 현장과 근대 산업, 문학작품의 흔적을 보전해 체험과 교육자료로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장 대표는 동일방직과 동아제분, 일진전기 등을 벨트화해 산업유산지구로 지정하고, 이곳에 산업박물관을 건립하자고 제안한다. 북성포구의 생태경관과 일제강점기의 산업유산벨트, 문학적 배경을 연계하면 인천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장 대표는 "북성포구 매립은 이 일대의 전면적인 개발의 출발점"이라며 "매립과 개발보다는 보전방안을 먼저 논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글·사진 정찬흥 기자 report6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