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 채취·중단 반복 … 어민·건설업체 반발 '악순환'
모래층 분포·품질 정밀측정으로 채취구역 최소화 계획
조합 "반대측에 과학적 논리 제시 … 정부정책 자료 제공"
▲ 바닷모래가 원활히 공급되지 못하면서 전국적으로 골재대란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국내 주요 바다골재채취업체로 구성된 해양기초자원협동조합이 코어시추조사를 시작하기로 해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 최초로 모래 부존량과 품질을 정밀 조사하는 코어시추조사는 인천·경기 등 수도권 바닷모래의 절반 가량을 공급하게 될 서해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시작될 예정이다. /사진제공=해양기초자원협동조합
국내 최초로 모래 부존량과 품질을 정밀 조사하는 코어시추조사가 본격화되면서 바닷모래 채취를 둘러싼 갈등이 해소될지 주목된다.

전국 주요 바다골재채취업체로 구성된 해양기초자원협동조합은 서해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서 코어시추조사를 시작한다고 23일 밝혔다. 정확한 해저 지질조사를 통해 바닷모래 채취구역을 최소화 해 어민들과의 갈등 해소에 나서겠다는 취지다. 서해 EEZ에서 한 해 생산되는 바닷모래는 1000만㎥ 가량으로 50% 가량의 물량이 인천·경기 등 수도권에서 사용된다.

▲코어시추조사
코어시추조사는 해저의 코어샘플을 채취·분석해 해저 깊이에 따른 모래층의 분포와 품질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조사기법이다.

이 방법은 주로 육상에서 지하 광물 분포를 파악하기 위해 시추를 통해 회수하는 코어를 관찰하는 방법으로 진행됐다. 코어를 통해 광맥, 절리, 암석 등의 크기와 위치가 규명되며 이를 통해 시추주상도를 작성하게 된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는 주상도 작성을 위해 수집한 코어를 별도 보관할 정도로 성분의 정확도와 보존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해상에서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주도로 2004년 코어시추조사가 이뤄졌지만 1회에 그쳤다. 해상 시추의 장비·기술 등의 문제로 바다 밑 지질 0.6~1.2m 깊이의 일부만 조사하는데 그쳤다.이후 현재까지 코어시추조사는 비용과 국내 코어시추장비 부재를 이유로 EEZ 등의 바닷모래 부존지역에서 단 한 번도 진행되지 못했다.

이번 조사는 바닷모래 채취단지 지정을 위한 용역 사업의 하나로, 친환경적 채취 방안을 마련하고 안정적인 부존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진행된다.

올 5월 설립한 해양기초자원조합은 면적 54㎢에 이르는 서해 EEZ 단지 예정 수역 내에서 500m 간격으로 총 217공, 6~30m 깊이로 코어시추를 한다. 이를 위해 고가의 장비를 구축한 조합은 서해안에 형성된 2~5m 펄층의 존재와 부존지역에 대한 정밀한 조사 결과가 바닷모래 채취 여부를 결정짓는 과학적 근거라는 판단에 따라 이번 조사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뜨거운 감자'된 바닷모래 채취
바닷모래 채취는 현재 건설업계와 수산업계가 치열하게 맞붙고 있는 '뜨거운 감자'다.

어민들이 무분별한 바닷모래 채취로 어획량이 급감했다고 반발하면서 지난 1월 남해 바닷모래 채취는 중단됐다. 건설업계 반발이 심해지자 지난 2월 해수부는 국토부의 남해 바닷모래 채취단지 관련 지정연장 신청에 대해 '3월1일부터 내년 2월28일까지 전년의 절반 수준(650만㎥)만 채취하도록 한다'는 해역이용협의 의견을 국토부에 전달했다. 이에 허가권을 가진 국토부는 2월28일 이 같은 내용으로 바닷모래를 채취하도록 고시했다.

수자원공사가 입찰 공고를 내려고 하자 수협, 어민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어민들은 3월 부산·통영 등 전국 항포구에서 어선 4만5000척을 동원, 바닷모래 채취에 반대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해상시위를 벌였다.
부산 등 남해 바닷모래를 사용하는 건설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골재 채취 어려움이 크다고 호소했다. 6월 국토부는 해수부, 수자원공사, 어민, 전문가 등과 민관협의회를 개최하려 했지만 어민들 반발로 무산됐다. 이처럼 찬반이 팽팽한 가운데 6개월째 입찰 공고 없이 남해 바닷모래 채취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남해 EEZ 모래 채취와 관련해 해수부는 연말까지 나오는 조사 결과를 보자는 입장이다. 해수부 산하기관인 국립수산과학원, 국립해양조사원은 남해 EEZ 골재채취단지와 주변 해역에 대한 자원 및 해저지형 조사를 진행중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연말에 나오는 수산과학원의 조사 결과를 보고 바닷모래 채취 여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며 "서해 EEZ도 추가적인 조사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국토부와 수자원공사는 건설업계의 고충을 고려해 시급히 바닷모래 채취를 재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자원공사측은 국토부의 허가를 받았고 해역이용영향평가, 해양환경영향조사도 진행한 상황인데다 골재 가격이 150%나 오른 만큼 바닷모래 채취를 재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해 EEZ 모래 채취를 놓고 중앙부처마저 서로의 입장을 내세우며 맞서고 있다 보니 불통이 서해 EEZ로 튄 꼴이다.

▲과학적 조사, 모래 채취 논란 잠식시키나
조합에 따르면 서해 EEZ는 지난 2007년 서해 EEZ 바닷모래 채취단지 지정 이후 그동안 정밀조사 없이 골재 품질 불량, 부존량 부족을 이유로 2010년, 2013년, 2016년 광구 위치와 채취 예정물량을 변경했다. 이 과정에서 바닷모래 채취가 무분별하게 이뤄졌고 어민들이 반발하자 채취 중단과 골재 파동, 건설공사 차질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도 지역별로 어민 반대로 채취가 중단되고 해역 이용협의가 늦어지면서 광구 개발이 지연되자 수급 불안정이 빚어져 건설공사에 차질을 주고 있다.

바닷모래 채취는 옹진군의 경우 올 8월 허가물량이 소진될 예정이고, 태안군은 이미 공급이 중단된 상황이다. 대체 골재채취 예정지 지정을 위한 관계기관 협의를 진행 중이지만 해상교통안전진단 심의에 많은 시간이 소요됐고 이후 진행될 해역이용협의도 난항이 예상된다.

남해 EEZ는 어민들이 어장 환경 훼손을 유로 반대해 채취가 중단됐다. 2017년 1월 물량이 소진된 이래 채취물량 650만㎥ 규모로 2018년 3월까지 연장 지정됐지만, 10m 이상 채취 금지 이행 조건에 대해 이견을 보이면서 현재까지 채취가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

서해 EEZ는 2018년 12월까지 단지 지정이 돼 있지만, 허가물량이 조기 소진될 전망이다. 지정 광구의 부존량 고갈에 따라 광구의 변경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조합 관계자는 "바닷모래 공급 장애 현상은 여러 가지 이유로 반복됐고 이해관계자간 갈등이 고조된 지금이야말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할 시점"이라면서 "코어시추조사 결과를 이용해 어민들의 바닷모래 채취 반대 주장에 대응하기 위한 과학적 논리를 제시하고 정부의 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김칭우 기자 chingw@incheonilbo.com



해양기초자원협동조합은
해양기초자원협동조합은 해양환경 보전 사업을 자발적으로 추진하고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골재수급량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인천의 경우해운을 비롯한 전국 17개 골재채취업체로 구성돼 지난 5월 설립됐다.

조합은 남해 EEZ, 서해 EEZ, 태안, 옹진 등 전국 주요 4대 골재 채취지역중 사실상 유일하게 골재채취가 이뤄지고 있는 서해 EEZ에 대한 과학적인 시추 조사를 통해 어민과의 갈등을 최소화 하겠다는 계획이다. 50여억원을 들여 장비를 구축, 코어시추조사를 하는 이유도 원인자 부담 원칙에 따라 최소한의 구역에서 피해를 최소화 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이기도 하다.

조합은 또 철저한 환경피해 저감대책 이행, 환경영향 최소화 채취, 단지관리·감독 강화, 채취해역 복원 등 바닷모래 채취를 위한 친환경적 요구조건을 선제적으로 충족시켜 나갈 계획이다.

조합 회장사를 맡고 있는 인천 경우해운 관계자는 "원인자인 바닷모래 채취업계부터 해양환경에 대한 자발적인 관심과 해양환경 보존, 해역이용 협의 의견 이행 의지를 높이겠다는 취지에서 조합을 설립하게 됐다"며 "바닷모래 공급중단이 불러올 국내 건설시장의 혼란을 방지하고 지속가능한 해양환경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구성원부터 자발적으로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김칭우 기자 ching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