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2배·면적 5배 '급성장'
'승용차 100만대 시대' 눈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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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이라는 말처럼 인천에 어울리는 수식어를 찾기 힘들다. '인천' 명칭이 붙은 지는 600여년이 지났지만 1883년 개항 이래 한 세기가 조금 넘는 동안 인천은 여느 도시보다 역동적이었다. 지난 30년만 놓고 보면 확장성은 두드러진다. 인구는 2배가 늘었고, 면적 또한 5배가 넓어졌다.

그 바탕에는 개척 정신이 깔려 있었다. 인천의 발전상은 단순한 개발 정책이나 행정구역 개편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전환점은 인천일보가 창간되기도 했던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렵 인천시는 '정보화 신도시' 건설 계획을 제시한다.

1988년 4월23일 인천시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정보화 신도시 계획을 보고했다. 2011년까지 송도 앞바다를 매립해 국제적인 교역·정보 중심지로 키우겠다는 얘기였다. 앞서 밑그림이 나왔던 '송도신도시' 택지개발 계획을 확장한 개념이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정보화 신도시 구상은 최기선 전 시장의 '트라이포트(Tri-port) 발전 전략'으로 구체화했다. 기존 인천항(sea-port)에 더해 1992년 첫 삽을 뜬 인천국제공항을 아시아 중심 공항(air-port)으로 삼고, 송도를 첨단 정보업무를 담당하는 텔레포트(tele-port)로 건설하는 발전상이었다.

트라이포트가 현실화하고 2003년 경제자유구역이 지정되면서 인천은 급속한 변화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30년간의 각종 수치는 인천이 '제2의 전성기'를 맞았음을 보여준다.

▲30년 만에 인구 2배, 가장 넓은 대도시로
1981년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됐을 때 인구는 114만명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7년에는 150만명을 돌파했다.

1970~1980년대 인구 증가는 '산업화'가 견인했다. 1972년 수립된 국토종합개발계획으로 인천 일대는 '경기임해공업지역'으로 지정됐다. 서울 인구를 분산하려는 정책으로 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인천은 '공업도시'로 성장했다. 주안·부평 등지를 중심으로 공업단지의 배후 주거지가 형성됐다. 1990년 당시 남구·북구 인구는 1970년보다 각각 2배, 4.1배로 늘었다.

인천시민이 많아진 결정적 요인은 행정구역의 변화였다. 인천국제공항이 건설된 영종면·용유면이 계양면과 함께 1989년 경기도에서 인천으로 편입됐다. 150만명을 돌파한 지 5년 만인 1992년 인천 인구는 200만명이 됐다.

'인천광역시'로 거듭난 1995년에는 옹진군과 강화군, 김포군 검단면도 인천으로 묶였다. 연수·계산 등지의 택지 개발이 마무리되면서 1999년에는 250만명을 넘어섰다. 2000년대 접어들어 경제자유구역 개발이 가속도를 내며 마침내 지난해 등록외국인을 포함해 인구 300만 고지를 밟았다.

다른 대도시에 견주면 인천의 인구 증가 속도는 독보적이다. 최근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주요 도시와 달리 인천만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30여년 전인 1985~1990년부터 인천은 인구증가율 1위 도시로 올라섰다. 2010~2016년에도 서울은 34만8427명, 부산은 5만9803명, 대구는 2만821명씩 줄었지만 인천은 오히려 19만3838명이 늘었다.

인천의 진화는 도시 면적의 확대로도 설명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인천 면적은 166.36㎢로, 일제강점기였던 1940년 165.82㎢와 별 차이가 없었다. 광역시가 되며 행정구역이 재편된 1995년 면적은 952.2㎢까지 늘었다.

확장은 계속됐다. 바다 위로 솟아난 송도국제도시를 비롯해 멈추지 않은 매립의 역사는 지난해 인천을 전국에서 가장 넓은 면적(1063㎢)을 지닌 대도시로 만들었다.

"도시 발전의 기반인 인구와 면적이 계속 증가하는 것은 그만큼 도시의 성장 잠재력과 희망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시는 설명했다.

▲5만대였던 승용차, 100만대 육박
인천 주택보급률은 101.0%(2015년 기준)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96.0%)·경기(98.7%)를 포함한 수도권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주택 공급은 아파트가 주도했다. 1985년까지만 해도 인천지역 전체 주택에서 단독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은 55.1%였다. 하지만 1990년대에만 21만3756호의 아파트가 공급되면서 단독주택 비중은 감소했다.

2015년 전체 가구(102만8722호)에서 단독·다세대·연립 등을 제외한 아파트는 56만3372호로 54.8%에 이른다.

자동차 수도 급속도로 증가했다. 1988년 인천지역 자동차 등록대수는 총 8만1794대였다. 버스·트럭 등 영업용 차량을 제외하면 승용차는 4만445대 수준이었다. 지난 5월 기준 자동차 수는 121만9186대까지 늘었다. 자가용만 98만6004대로 100만대에 육박하고 있다.

인구 팽창과 자동차 보급률 증가는 도로망 확충으로 이어졌다. 1989년 947.2㎞였던 도로 총 연장은 2015년 3819.6㎞로 길어졌다. 인천발전연구원이 2009년에 펴낸 책 '지표로 보는 인천'은 "도로 연장은 1986~1996년에 7.2%, 1996~2006년에는 3.4%의 증가율을 보였다"며 "1980년대 중후반 인천시의 시세 확장 등의 영향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교육 환경의 질적 수준도 확연히 달라졌다. 1988년 인천지역 각급 학교 수는 413개였다. 학생 수 40만8676명에 교직원 1만3068명이었다.

2015년 학교 수는 929개로 2배 이상 많아졌다. 학생 수는 38만7589명으로 감소했으나 교직원은 2만8885명으로 늘었다. 특히 초등학교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같은 기간 46.04명에서 15.9명으로 대폭 줄었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