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민 정치부 기자
"아직 우리 도시에는 쓸 만한, 버려진 산업용 건물이 많다."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2013)라는 책에 소개된 이탈리아 볼로냐 시 도시계획 담당 공무원의 말이다. 1970년대 들어 볼로냐 원도심은 쇠퇴 위기를 맞았다. 외곽 지역에 기업이 유치되고, 사람들이 몰리면서 원도심의 산업 시설은 버려졌다.

볼로냐 시는 이들 건물을 재활용하는 도시계획을 세웠다. 방치된 제빵공장은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했고, 도축장은 도서관과 예술대학이 들어선 문화예술센터로 변신했다. '창조도시'로 주목받은 볼로냐는 2000년 유럽의 문화수도로 선정됐다.

이 책을 쓴 건축가 김정후 박사는 "산업유산을 통한 장소 마케팅과 관광 유발 효과를 높이는 것은 도시를 발전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방식을 모색하는 높은 수준의 사회 디자인"이라고 했다.

지난달 말 인천 중구 송월동에서 100년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애경사 비누공장이 기습 철거됐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인천시 문화재 담당 공무원은 "송월동에 중요한 건물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공장인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가치 재창조'를 강조한 민선6기 인천시는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의 하나로 비누를 꼽았다. 정작 비누가 만들어진 공장은 시가 자체 조사한 근대 산업유산 목록에도 빠져 있었다. 한때 전국으로 팔려나간 비누를 만들던 공장은 기억에서 잊혔고, 고물상으로 쓰이며 눈엣가시가 됐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처럼 산업용 건물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철저히 기능 위주다. 본래 역할을 다한 공장은 사랑받기 어렵다. 애경사 건물은 일본인 공장으로 쓰였으니 시선도 고왔을 리 없다.
볼로냐처럼 독일 함부르크도 항구도시 재생 계획을 통해 오래된 창고를 해양박물관·과학센터로 개조했다. 21세기 복합도시를 추구하면서도 건물을 새로 짓지 않고 역사성을 살렸다. '공존의 가치'는 세계적 기업이 입주하는 미래 항구도시의 길을 열었다.

김 박사는 "산업유산의 재활용을 통해…전혀 다른 기능과 형태를 가지고 사용되던 건물이 새로운 역할을 담도록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높은 수준의 창조적 아이디어가 탄생한다"고 썼다. "산업유산이 창조의 어머니"라는 얘기다.
가치 재창조로 떠들썩한 인천은 산업유산 재활용에 불효를 저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