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문화체육부국장
고려왕조는 다원주의에 기반한 다원(多元)사회였다. 다양한 사상과 문화가 공존하면서 하나의 거대한 통일성을 이루는, 사회 구성원들이 개별적이면서 유기적인 '벌집'과 같은 사회였다. 종교만 봐도 그렇다. 불교, 유교, 도교, 풍수지리와 민간신앙이 공존했지만 '팔관회'와 같은 통일된 국가행사를 통해 사회대통합을 이뤄 나갔다.

그 어느 시대보다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사회이기도 했다. 수도 개경(개성)의 벽란도를 비롯한 황해 일대는 동아시아 무역의 중심지로 송나라, 거란, 여진, 회회인(아라비아상인)들까지 북적댔다. 우리나라 영문 국호인 '코리아'(KOREA)가 고려 때 알려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회적으로 남녀가 똑같이 재산을 상속받았고 여성도 호주가 될 수 있었던 사회가 고려였다.

다양성의 인정과 개방성은 자연스레 문화융성으로 이어졌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인 '상정고금예문', 목판인쇄술의 세계 최고봉인 '팔만대장경',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와 같은 고려청자가 모두 고려시대에 탄생했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런 유물들이 인천 강화도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고려왕조는 몽골제국에 항전하기 위해 '강화천도'를 단행한 시기(1232~1270)에 이 '문명의 진주'들을 압축적으로 피워냈다.
어쩌면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 보자. 작은 불씨 하나가 천지를 뒤덮는 들불로 번지고,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토네이도를 발생시킨다는 것을 우린 종종 목격해 왔다. 21세기 인터넷정보혁명의 단초는 인류의 제1정보혁명인 인쇄술에 기반한 결과이고, 그 인쇄술은 금속활자로 가능했다.

현대사회에서도 각 분야 연구의 진전은 '벽돌 한 장 쌓기'로 시작된다. 한 사람이 한 장 씩의 벽돌을 쌓은 것이 점점 축적돼 마침내 '과학혁명'을 일으키고, 인류의 과학문명은 눈부시게 진전하는 결과를 맞는다. 역사를 반추하는 것은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작업인 셈이다.

고려 건국 1100주년인 2018년을 앞두고 고려의 고도(古都)였던 강화도가 주목받고 있다. 인천시는 얼마 전 '고려역사문화단지' 조성을 위한 5대 분야 20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고려 궁궐의 재건, 고려 기록유산의 활용, 팔만대장경 판당 발굴, 고려건국 1100주년 기념사업 등이 주 내용이다.

집단지성의 맹아였던 금속활자는 현재 남북에 각각 1개 씩만 남아 있다. 다보성미술관이 7년 전 <직지심체요철>보다 무려 138년 앞선 <남명천화상송증도가>에 쓴 금속활자 101개를 공개했지만, 최근 문화재청이 "오래된 활자는 맞지만 출처·소장경위 등이 불분명하다"며 "먹 연대측정 결과로 활자의 연대 측정하기에는 무리"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고려금속활자일 가능성은 열려 있으며, 추가 증빙 자료가 확보돼 재심이 청구되면 다시 심의할 수도 있다"는 여운을 남겼다. '증도가자'는 금속활자로 인쇄한 책을 다시 목판으로 새겨 인쇄한 '번각'(飜刻)본이긴 하지만 1239년 인천에서 탄생한 두 번째 금속활자본이므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팔만대장경의 경우 현재의 해인사로 이운되기 전까지 1251년부터 150년간 보관했던 강화도의 '대장경판당'을 찾아내는 작업이 급선무다.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간 이유와 경로 등을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다. 금속활자와 팔만대장경 같은 강도 시기 보물의 정확한 규명과 유물의 발굴과 함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에 대한 연구가 뒤따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향후 30년 간 진행할 이 프로젝트의 관건은 역시 재원의 확보다. 수조원을 투입해야 하는 '강도(江都)의 꿈' 프로젝트는 국·시비는 물론이고 민간자본까지 합류해야 가능하다. 이를 위해 인천시와 강화군,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물론이고 문화체육관광부, 통일부, 외교부, 국회, 북측 기관 등이 적극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강화도의 고려를 연구할 때 본래 수도였던 개성을 함께 보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남북학술교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이에 대응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인한 한반도 긴장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는 묘안이 될 수 있다. 역동적이고 개방적이며 다원적이었던 고려를 다시 보며 미래 한반도의 1100년을 기획하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