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폐가 수십곳 우범지대
음침·구불 '무서운 동네'서
벽화·색계단 등 환경개선
산뜻해진 '안전한 동네'로
▲ 경사가 가파른 지동마을 일대에 설치된 안전계단.
▲ 훼손된 마을 담장에 주민들이 새로 칠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 /사진제공=수원시
5년 전 길을 지나던 20대 여성이 살해되면서 '범죄의 온상'이라는 낙인이 찍힌 수원시 지동 마을이 안전마을로 재탄생하고 있다.

24일 수원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해 8월 '지동 안전한 지역사회 만들기 모델사업'에 착수한 뒤 생활환경 및 안전인프라 개선 작업에 매일 분주한 상태다. 생활환경 및 안전인프라 개선을 통해 지동 주민의 안전한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시의 최종 목표이다


▲지동이 우범지대로 전락하기까지

지동 마을은 개발이 어려운 구조적 특성을 갖고 있다. 대부분이 문화재보호구역으로 개발행위 제한을 받는데다 지형도 오르락내리락 한 것이 원인이다.

지동 마을의 일대가 낙후되면서 주민들의 안전은 보장받기 어려운 처지에 내몰렸다. 지동에서 버려진 공·폐가는 48개로, 동사무소가 관리하지 않는 공·폐가를 포함하면 그 수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건축물 상당수(59.4%)도 1960~1970년대에 지어진 노후건축물이다. 그러나 문화재 보호구역·재개발지구의 지정 등으로 이들 건물에 대한 개발·보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마을 안의 길은 '구불구불'해 마치 미로를 연상케 한다. 골목길은 사유지가 대다수라 시가 정비에 나서지 못하면서 보행안전·범죄예방 확보도 불가능했다. 도로도 마을의 약 20개 구간, 총 길이 1.67km에 달하는 규모가 최저 11.69%부터 최고 37.33%의 매우 가파른 '급경사로'이다.

또 주민 인구에 비해 공영주차장 이용가능대수가 턱 없이 부족하고 쓰레기 무단투기 장소가 곳곳에 퍼져 있어 쓰레기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서 지동은 '살기 좋지 않은 마을'로 꼽혔다.

그러던 2012년 밤 시간대에 지동초등학교 부근을 지나던 20대 여성이 살해당하는 일명 '오원춘 사건'이 발생하면서 동시에 주민들의 불안감이 급증했다.

최근 시의 설문조사에서 전체 주민 가운데 63.55%에 달하는 주민이 '범죄사건에 불안하다'고 응답했다. 근 15년 동안 지동을 떠난 마을 사람들도 5122명에 이른다.

▲지동, (지)금과 다른 안전한 (동)네로

수원시가 주민 안전 확보를 위해 본격 나서면서 지동마을이 탈바꿈하고 있다. 시는 지난해 사업에 착수한 이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소속 박사 등 전문가들과 함께 안전·재해·범죄·감염병 등 현황 조사 파악부터 수십 개의 개발전략을 세우는 등 치밀한 작업을 벌여왔다. 염태영 수원시장도 밤낮 가리지 않고 관계부서와 함께 지동 일대를 직접 둘러보며 문제를 파악하기도 했다.

시의 이 같은 행정의 배경에는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실제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안전한 마을을 만들자는 의지에서 비롯됐다. CCTV, 가로등 설치 등 시설확충을 기본으로 두면서 범죄예방을 위한 노후화 시설 개선에 초점을 두는 것이 시의 기본구상이다.

또 지동을 지속가능한 안전마을의 '모델'로 구축해 다른 안전마을 조성사업에 대응한다는 중·장기적 차원의 의미도 담겨있다.

우선 마을 내 흉흉한 골목길과 벽이 눈에 띄게 바뀌었다.

시는 2011년에서 올해까지 총 7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5.8km에 달하는 벽화를 조성하고 있다. 6년 동안 4㎞ 구간에 벽화가 그려졌고, 올해 1.8㎞ 구간이 더해진다. 벽화는 '생태! 골목에 심다', '동심! 골목에 펼치다', '추억, 골목과 만나다' 등 7가지 주제로 나눠져 있다.

국내 최대길이의 벽화가 생겨나면서 과거 갈라지고 때가 낀 콘크리트, 흉흉한 낙서가 가득했던 지동의 이미지가 지워지고 있다.

주민들은 마을 곳곳의 전환된 분위기를 몸소 체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CPTED(범죄예방 건축설계기법)' 등을 활용한 갖가지 아이디어성 사업들도 눈길을 끈다.

가로등이 부족해 어두운 장소는 '조명열주' 배치를 통해 환하게 밝힌다. 복잡한 골목길에는 보행자가 방향인지가 가능토록 야광 안내판을 설치하고 바닥과 벽면에는 '막다른 길이에요'라는 태양광 조명블럭도 설치된다.

▲주민이 나서는 마을 만들기

수원시의 지동 마을 만들기 사업이 주민들로부터 호응을 얻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사업을 주민이 주도하고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간 상당수 지자체는 마을 개선 사업을 벌일 때 관이 중심이 되는 '공공주도'의 방식을 채택했다.

반면 이번 수원시 사업은 정책부터 수립까지 마을 주민들이 결정한다. 사업의 평가 주체도 주민이다.

주민 과반수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사업 추진 자체가 불가능하단 의미다. 주민들은 또 직접 사업에 동참하기도 한다.

벽화 조성 사업에만 지역주민, 자원봉사자 등 총 2만 여명에 이르는 인원이 참여했다. 시는 마을만들기 계획을 수립할 당시부터 주민이 중심이 되는 '공동체' 운영에 중점을 뒀다.

초반에는 주민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우리집 주변은 우리가 꾸민다'는 주민의식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사업의 중심에 주민들이 자리잡았다.

시는 주민이 스스로 마을환경 개선에 나서는 것이 곧 정책의 실효성 상승에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