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 창영동은 원래 우각리였다. 창영초등교로 해서 옛 전도관으로 올라가는 고갯길이 쇠뿔고개였으므로 그 한자풀이가 소우(牛)와 뿔각(角)의 우각이었다. 대개의 지명이 그러하듯 이곳 일대의 지형이 쇠뿔 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잡초숲이 우거져 도둑이 나올법했던 호젓한 고개가 인천항 개항과 더불어 서울길로 각광을 받게된 것이다.
 이곳 일대에 경인선이 지나지 않았다고 가정하고 보면 창영과 도원동은 하나로 이어진 구릉이다. 그런 것을 철길을 뚫느라 도원동과 양분되고 또 하나의 고개 황굴고개가 생겼다. 이곳은 1897년 최초의 경인선 기공식이 거행된 곳이기도 하다. `인천한세기""의 신태범 박사도 현 인천세무서가 있는 언덕길을 쇠뿔고개라 불렀는데 철도의 개통으로 양단 도원동쪽이 황굴고개가 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후의 광복이전 송림동 샛골 일대가 구획정리되면서 공설운동장으로 도로가 연결되어야 했으나 철도로 단절되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행인들은 도원역이 위치한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내리면서 철길을 건너다녔다. 행인이 빈번하여 잡상인들이 노점을 폈다가 60년대후반 까지도 판잣집이 무질서하게 자리했는데 도원로가 확장될 때 철거되고 지금은 도원역이 좌정하고 있다.
 그 지점에 육교가 가설되고 창영 도원의 양지역이 연결된 것은 운동장 때문이었을까. 비교적 빨라서 1955년이었다. 그때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샛골에서 운동장을 잇는 도림로가 산뜻하게 포장되었던 일이 기억에 생생하다. 인천의 중요한 건설사업-즉 인천교 숭의육교 동인천역지하도 등이 60년대에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곳은 아주 요긴한 길목이었다. 다시 1968년 경인복선이 개통될 때 폭 15m 길이 17.4m의 현재와 같은 육교가 완성되었다.
 도원육교가 경인선의 복복선공사로 인해 재공사하느라 7월부터 폐쇄되리라 한다. 규모는 작아도 그곳은 교통의 요충이다. 백지화로 알려지고 있으나 인천지하철 3호선이 지나가려던 길목이다. 그 시설까지도 미리 완전하게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