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파주시 진동면에 허준 선생 묘가 있다. 이 곳 땅 속에서 1991년 두 동강 난 묘비가 발견됐는데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묘비에는 흐릿하지만 '양평군 호성공신 허준'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허준 선생 묘라는 증거다.
군부대 허락을 받고 통일대교를 지나 네비게이션이 작동되지 않는 길을 15분 정도 달려야 도달할 수 있는 곳. 사람에게는 지옥이지만 자연에게는 낙원이라는 민통선의 맑은 공기 속에 허준 선생 묘가 있다. 묘 오른쪽에는 부인 안동김씨가, 위에는 어머니 영광김씨가 묻혀 있다.

뼈대있는 무관 가문 출신이지만 서자이기에 의학을 선택한 허준. 내의원에 들어온 후 광해군의 천연두를 치료한 공을 인정받아 동반, 즉 양반이 된다. 그 후 선조의 피난길을 끝까지 함께한 17명 중의 한 명으로 남고 공신의 반열에까지 오른다.

뛰어난 의술솜씨와 우직한 충성으로 파격적인 승진을 거듭한 허준. 하지만 '양반에게 굽실거리지 않으며, 임금의 은총을 믿고 교만스럽다'는 질시도 함께 받던 그는 선조 승하의 책임을 지고 의주 유배형에 처해지게 된다.

그러나 역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기록이라고 하듯이 허준 선생은 인생 최대 시련기인 1년8개월 유배기간 동안 동의보감 대부분을 집필한다. 사간원의 극심한 반대에도 광해군은 71세의 허준을 내의원에 복귀시키고, 이듬해 허준은 25권의 동의보감을 광해군에게 바침으로써 믿음에 보답하고 77세의 나이로 눈을 감는다.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세계 최초 일반인을 위한 의학서적 동의보감은 두 가지 큰 장점이 있다. '병든 몸을 치료하는 것보다 병에 걸리지 않게 한다'는 원칙과 중국에서 수입한 값비싼 약재 대신 우리나라 약재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따금 접하는 과잉진료, 선택진료비(특진료) 논란 뉴스와 허준 선생의 예방의학·애민사상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김진효 경기도 문화유산관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