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식 대대와 만남 당구 인생 터닝포인트"
● 선수의 꿈 이끈 국제식 대대와의 만남
김재근이 처음 큐를 잡은 계기는 고등학생이던 1980년대 후반이다.
당시 김 선수의 모교가 재단 내부 문제로 구성원들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고 내홍을 겪으면서 어수선하던 시기였다.
"당시 학교에 가도 공부에 전념하기 어려운 분위기였어요.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당구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흥미롭더라구요. 그 때부터 당구에 빠지게 됐죠."
그렇게 당구를 즐기기 시작한 김재근은 1992년 그를 당구선수로 이끈 우연한 만남을 경험한다.
그런데 그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당구대였다. 사연은 이렇다.
당구 동호인 김재근은 1992년 우연히 신포동에 있던 한 당구장을 찾았다.
그런데 이 당구장은 당시 현역 당구선수이던 이용희가 운영하던 곳으로, 국내에서는 드물게 국제 대회용 공식 당구대(국제식 대대)를 갖추고 있었다.
당시만해도 우리나라 당구대는 국제식 대대보다 가로·세로 크기가 더 작은 국내식 중대가 일반적이었다.
김재근은 이날 TV로만 보던 국제식 대대를 실제 처음 봤고, 이 자리에서 당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당구선수로서 태극마크를 달고 우리나라를 대표해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김재근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목표가 섰으니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수소문 끝에 선수가 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인천당구연맹을 통해 선수등록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당구를 아무리 잘쳐도 당장 선수가 될 수는 없었다.
일단 인천당구연맹으로부터 준회원 자격을 얻어 1년 동안 1달 간격으로 경기를 치러 최종 순위 1·2위 안에 들어야만 정회원으로 승격이 되면서 공식 시합에 나갈 수 있었다.
3쿠션을 1이닝에 평균 0.8개 이상 쳐야하는 기준도 있었다.
1993년 준회원이었던 김재근은 이 과정을 1년 만에 통과했다.
지금은 추천이나 동호인 대회 입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당구선수가 될 수 있지만, 당시만해도 이 방식이 당구선수가 되는 유일한 길이었다.
김재근은 이 방식으로 선수가 된 마지막 세대다.
1995년 정회원 자격을 얻은 김재근은 각종 공식 시합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당구를 쳐 얻는 수입만으로는 생활을 할 수 없어 직장을 다녀야 했다.
연습은 퇴근 이후에만 할 수 있었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하니 연습도 오래 할 수 없었다.
그렇다보니 성적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2000년부터 선수로서 당구에만 전념하고 싶었했던 김재근은 결국 2006년 각고의 노력 끝에 그 꿈을 이룬다.
현재 주안에서 그가 운영 중인 CC당구클럽의 문을 연 것이다.
당시 그의 당구장은 전국 최초로 국제식 대대 10개(국내식 중대 10개 포함)를 갖추면서 동호인들 사이에 명소로 자리잡았다.
이렇게 CC당구클럽을 차리면서 자신만의 연습장과 고정적인 수입원을 갖게 된 김재근은 이후 다른 걱정거리를 접고 주야장천 당구 연습에만 매달린다.
● 아버지와 사별 아픔 딛고 세계챔피언 우뚝
성과는 곧 나타났다.
이전까지 각종 대회 최고 성적이 3위였던 김재근은 2008년 대한체육회장배 준우승 이후 2009년 6월 같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한 달 뒤인 2009년 7월에는 유니버설배 제4회 대구오픈 3쿠션 전국당구대회까지 제패하는 기염을 토하면서 당구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당구용품 전문 브랜드 '김치 빌리어드'라는 후원자까지 만나면서 김재근은 날개를 달았다.
이후 그는 각종 전국대회에서 2~3위권을 유지하다 드디어 2015년 7월 '제5회 부산광역시장배 3쿠션 전국당구대회'와 같은 해 11월 '제4회 인천광역시장배 전국 3쿠션 오픈 당구대회'에서 우승, 국내 랭킹을 끌어올리며 2016 세계 팀3쿠션 선수권대회 첫 출전 자격(국내 랭킹 1·2위)을 얻었다. 하지만 결과는 16강 탈락.
하지만 김재근은 실망하지 않고 2016년 제27회 재팬컵 3쿠션 대회 우승 등으로 건재를 과시하며 다시 한 번 2017 세계 팀3쿠션 선수권대회 출전 자격을 얻은 끝에 올 해 3월 두번째 도전만에 기어이 우리나라 선수 최초로 이 대회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룬다.
사실 김재근은 이 대회를 앞두고 아버지를 잃는 큰 슬픔을 겪었다. 하지만 아픔을 이겨내고 결국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쥔 것이다.
"사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몸과 마음이 성치 않았지만 이를 악물고 대회를 치렀습니다. 그런데 대회 결승전을 앞두고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셨어요. 경기장에서 절 지켜보고 계셨어요. 결국 우승했고 아버지가 나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셨구나 생각하니 정말 뭉클했습니다."
그는 "팀 경기에서는 세계 정상에 섰으니 앞으로는 개인전에 나가 다시 한 번 세계챔피언이 되는게 목표입니다. 그리고 고향 인천을 위해 올 해 전국체전에서 인천대표로 나가 금메달을 따고 싶어요. 장기적으로는 인천에서 당구 유망주를 발굴해 육성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종만 기자 malema@incheonilbo.com ·사진제공=코줌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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