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진 사회부 기자
▲ 김원진 사회부 기자
▲ 김원진 사회부 기자

"앞으로 퇴근 빨라지면, 웃어야 돼, 울어야 돼?" 알고 지내던 여성 한 분이 최근 연락을 해선 대뜸 이렇게 물었다. 국회가 법정 근로시간 52시간 감축안을 내놨다는 기사를 봤다며 "일찍 끝나는 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런데 여긴 특근, 잔업 안 하면 애들 학원비부터 막막해"라고 말을 이었다. 그는 20년 넘게 공장에서 일해 온 여성 노동자다.

1980년대 초, 그는 열여섯 나이에 상경해 한 제조업체에 입사했다. 얼마 뒤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면서 인천으로 와 현재는 남동산업단지에서 일한다.
이 곳에서 만 10년 넘게 일해 이젠 동료들 사이에서 '왕언니'로 불린다. "아이들 학창시절엔 0교시 보내고 출근해 야간자율 끝날 때 같이 들어왔어. 회식은 밤 9시 넘어야 시작하니 빨리 먹고 집에 가자고 배운 게 '소맥(소주·맥주)이야"라며 "근로시간만 줄이면 소용없어, 최저임금도 올려야지."

인천지역 중년 여공 임금은 노동계와 경영계가 해마다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벌이는 협상 테이블에서 정해진다고 해도 심한 말이 아니다. 1970~1980년대 어린 여공과 마찬가지로 산업계 가장 밑바닥에 있는 계층이다. 초과근무 수당 1.5배를 챙기지 않으면 제대로 된 월급봉투를 기대하기 힘들다. 중소기업계는 정치권의 근로시간 단축 언급에 즉각 반발했다. 이유는 최저임금 인상 때와 마찬가지로 '생산성 하락', '인건비 부담' 등등, '우린 유예해 달라'고 설명한다.

산업 태동기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밑거름이었던 10대 여공들은 이제 중년 여성 노동자가 됐다. 어린 시절엔 '고도성장'이라는 명분 아래 저임금, 과노동을 감내해야 했다면, 지금은 '불경기'가 그들의 처우 개선에 발목을 잡고 있고 있다.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경영상 최고의 애로사항으로 '인재 확보'를 꼽는다. 적은 월급에 시간 외 노동도 많으니 청년 구직자들이 도무지 눈길을 안 준다. 이 공백 채우는 세대가 40·50대 여성들이다. 돈은 절실한데, 일할 곳은 많지 않으니 초과근로수당 1.5배 받으려고 하루 12시간도 일하고 있다. 만성화가 된 경기 침체 속 중소기업계 어려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여성 노동자 저녁과 휴일을 좀먹는다면, 정상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