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회진 사회부 기자
▲ 정회진 사진부 기자
지난 25일 오후 9시15분. 세월호가 진도 바다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월호는 우리사회의 모순을 응축하고 있는 '슬픔의 배'였다. 그 모순들은 취재 과정에서도 쉽게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서서히 올라오는 세월호처럼, 사고 1000일을 앞뒀던 올해 1월8일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날 오전, 취재를 위해 방문한 인천가족공원 세월호 추모관은 조용하다 못해 황량했다. 종이에 쓰여져 추모관 유리문에 붙은 '정부의 무능함으로 추모관을 폐쇄하게 됐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라는 내용의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문은 자물쇠로 꽁꽁 묶여있었다. 지난해 4월 개관 이후 재원 부족으로 파행 운영돼오던 끝에 유가족들이 추모관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유가족들은 그간 십시일반 돈을 모아 추모관을 운영하다가 힘에 부쳤다고 했다. 그날 날씨는 몹씨 추웠던 것 같다.

추모관에 얽힌 기억은 또 있다. 이달 23일 정부가 막 세월호 인양을 시도하던 때였다. 추모관에서 만난 김영주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뼈 있는 한 마디를 건넸다. 그는 추모객이 얼마나 오갔느냐는 질문에 "몇 명이나 왔는지가 왜 중요한가요"라고 했다. 유가족들은 정부가 방문객 수가 적어 추모관 운영비를 주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었다. '수요가 적으니 예산 편성도 어렵다'는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불편한 논리가 추모관을 덮고 있었다.

세월호가 올라오면서 과거의 막말도 다시 떠오르고 있다. 누군가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며 세월호를 미수습자와 함께 그냥 바다 속에 둬야 한다고 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돈의 논리'에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가슴을 쳐야 했다. 그런 막말을 꾹 씹어 삼켰던 유가족들은 인양이 성공하자 "너무 감사하다, 죄송하다"라면서 감사와 사죄를 반복했다.

세월호 추모관과 인양 앞에서 돈을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생명의 존엄성보다는 경제적인 논리를 우선시 해왔고, 결국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을 맞이해야만 했다. 경제 논리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이고, 그 기본에 충실한 안전 사회를 만드는 것이 남은 이들의 몫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