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아프고 상처난 곳 어루만졌다"
▲ <몸의 중심> 정세훈 삶창 132쪽, 8000원
"어려서부터 언젠가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하지만 소규모 영세공장에 들어가면서 글쟁이의 꿈을 접어야 했지요. 그 꿈을 이룬 건 33세가 되던 해였어요."

정세훈(63) 인천민예총 이사장이 시집 <몸의 중심>(삶창·132쪽)을 펴냈다. '노동자의 땀'이 엿보이는 이 시집은 노동이라는 우물에서 체험이라는 두레박으로 직접 길어올린 것들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가 강요하고 있는 노동자의 처지와 노동의 가치에 대한 치열한 사유와 실천이 엿보인다.

"노동자의 처지와 노동의 가치를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제3자적 관찰을 통해 노동의 현실을 노래하기 보다는 제가 겪었던 노동체험의 회상을 통해 불러온 글들이 대부분이죠."

정 이사장의 말처럼 이 책엔 그가 겪은 노동의 체험이 맹렬하게 꿈틀대고 있다.

'몸의 중심으로 마음이 간다 아프지 말라고 어루만진다/ 몸의 중심은 생각하는 뇌가 아니다 숨 쉬는 폐가 아니다 피끓는 심장이 아니다/ 아픈 곳!/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처난 곳/ 그곳으로 온몸이 움직인다'(시 '몸의 중심' 전문)

시인에게 '몸의 중심'은 바로 '아픈 곳'이다. 이런 통렬한 인식은 시인 자신의 고된 노동을 통해 얻은 병마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번 시집엔 투쟁 현장에서 낭송한 시편들이 적지 않습니다. 제 시에 등장하는 '상처난 곳'은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곳입니다. 이번 시집의 주제는 바로 상처난 곳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평4공단'이란 시는 서사를 통해 노동자들이 근대문명에 소모되고 버려진 존재들이란 문명사적 통찰을 담고 있다.

'부평4공단 드넓은 벌판에/ 삶이 죽음보다 가까운, 순풍인 듯/ 불던 산업화 바람 멈추고/ 사각형의 공장들이 하나둘 떠난 자리/원격조정 중앙시스템 장비가 갖추어진/ 화려한 빌딩들이 어지럽게 들어서고/ 떠난 공장에 버림받은 소년 소녀들/ 속절없이 불던 산업화 바람처럼/ 어느 사이 훌쩍 나이만 들어/ 기웃거리네 배회하네/ 죽음이 삶보다 가까운 부평4공단 드넓은 벌판을'(시 '부평4공단' 전문)

"노동자 등 민중과 함께 호흡해가고자 하는 내 시들에게 세상은 단 한 번도 빛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미약하게나마 내 시가 언제나 세상의 빛이 되길 희망해 봅니다."

정 이사장은 1989년 <노동해방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 왕성한 문단활동을 했지만 공장에서 걸린 병이 악화되는 바람에 2000년대 초반 활동을 접었다가 2011년 활동을 재개한다. 시집 <손 하나라로 아름다운 당신> <맑은 하늘을 보면> <끝내 술잔을 비우지 못하였습니다>, 장편동화집 <세상 밖으로 나온 꼬마송사리 큰눈이>, 포엠에세이집 <소니기를 머금은 풀꽃향기> 등을 펴 냈다. 현재 리얼리스트 100 상임위원과 한국작가회의 이사이기도 하다.

/글·사진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