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작가 양진채 "고향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시작" 첫 장편 펴내 … 최고의 변사 이야기
▲ <변사 기담> 양진채 강 312쪽, 1만4000원
인천작가 양진채가 첫 장편 <변사 기담>(강·312쪽)을 펴냈다.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양진채는 인천을 무대로 한 작품을 주로 써왔다. <변사 기담> 역시 인천을 무대로 한 작품이다. "고향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시작했다"고 밝힌 양진채는 자유공원, 제물포구락부, 조계지, 웃터골, 인천상륙작전 상륙 지점 등 인천의 역사적 명소들을 소설 배경으로 등장시킨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그리고 월미도 미군 폭격사건 등 지나간 시대상이 소설과 함께 흘러간다.

소설은 무성영화 시절 인천에서 변사로 활동한 기담이란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제물포구락부의 유리 장식장 안에 종이 모형으로 자리 잡은 당시의 빛나던 건물들처럼 지금은 스러지고 빛이 바랜 그 시절을 작가는 풍성하게 재현해낸다. 그 시간 속에는 최고의 변사로서 말의 성찬을 벌였던 기담의 젊음이 있고, 기녀 묘화와의 사랑이 있다. 소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변사의 연행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작가의 시선은 균형감 있고, 문장은 단단하다.

소설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주인공인 기담의 찬란했던 변사 시절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기담의 증손자인 정환의 이야기다. 기담이 변사가 되고, 연행을 하고, 묘화를 만나 사랑을 하고, 혀를 잘릴 때까지의 과거 이야기가 소설의 충심축이라면 증손자 정환이 기담의 집에 머무르며 영화를 만드는 현재의 이야기가 또 다른 축으로 마주본다.

양진채는 작가의 말에서 "문장의 마침표를 찍는 일이 꼭 소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이었다. 그런데도 말(言)을 붙들어야 했다. 형벌이었는데, 아주 지독한 형벌만은 아니었다. 말을 붙드는 동안에는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천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시작한 장편소설이었다. 빚을 갚기까지 오래 걸렸다. 이제 다시 숨을 쉬기 위해 이 책은 오롯이 그에게 바쳐야겠다"고 밝혔다.

윤후명(국민대 문창대학원 겸임교수) 소설가는 평을 통해 "일찍이 못 보았던 소설을 보면 다시 삶을 일으킨다. 더군다나 인천이라는 공간에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이 소설은 경이로운 것이었다. 가장 소중한 인생 공간을 비워놓고 무엇을 채울까 망설이다가 드디어 마땅한 것을 얻은 느낌이기도 했다. 오래전에 우리 곁에 있던 변사가 안타깝게도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다시 내게 살아와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반갑고도 눈물겹다. 이야말로 문학이라고, 탄탄한 문장을 짚어나가면 우리에게 이런 작가가 있다는 사실부터가 놀랍게 여겨진다. 변사의 삶에 꿰여 있는 지난 시대가 풍성하게 재현되며 주인공 기담과 묘화의 사랑이 애절하다. 제물포구락부에 그 사랑의 오묘한 빛을 간직한 백조 공예품이 있다 하니, 나의 '어떤 환상'이 어느 날 발길 옮길 곳을 찾은 기쁨이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1만4000원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