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2주년 다양한 기념사업...지면을 바탕으로 한 특집기획물
▲ 2016년 11월29일 인천일보 회의실에서 '대중일보 창간 71주년 좌담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왼쪽부터 이희환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대표,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 김학균 인천예총사무처장, 김송원 인천경실련 사무처장, 유중호 NIB 남인천방송 보도국장)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인천일보 DB
광복 직후 인천의 대표 민간신문이자 '독립언론'인 '대중일보'가 올해로 창간 72주년을 맞습니다. 1945년 10월7일 창간한 대중일보는 '대중일보-인천신보(1950.9)-기호일보(1957.7)-경기매일신문(1960.7)'으로 명맥을 이으며 인천시민들의 입과 귀가 돼 주었던 신문입니다. 그러나 1973년 박정희 군사정권의 언론탄압인 1도1사 정책에 따라 강제 폐간당합니다. 이후 인천은 언론의 암흑기를 지내야 했습니다. 인천일보가 독재정권의 탄압에 종간한 대중일보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창간 72주년을 맞아 올해 인천 언론인, 인천시민사회와 함께 다양한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독자와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대중일보를 보는 인천시민들의 인식

일제강점기의 암흑을 뚫고 광복직후인 1945년 10월 인천에서 비상했다가 1973년 폐간된 '대중일보(大衆日報)'에 대한 인천시민들의 인식이 점차 바뀌고 있다. 지난해 본보가 창간 71주년을 맞아 개최한 좌담회에서 이같은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해 11월29일 인천일보 5층 회의실에서 열린 '대중일보 창간 71주년 기념 좌담회'에서 인천시민을 대표하는 각계 각층의 인사가 대중일보는 "인천의 자산이자 역사이며 독립신문"이라는 데 뜻을 같이 했다. 따라서 "누구의 소유가 될 수 없으며 인천 그대로의 역사, 인천 그대로의 언론사(史)로 봐야한다"며 인천의 언론인들이 앞장서서 이같은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진석(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 김학균(인천예총 사무처장) 이희환(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대표) 김송원(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 유중호(NIB남인천방송 보도국장)씨가 참석한 이날 좌담회에선 '인천언론주권'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인천시 차원에서 펼쳐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또 항구도시 인천의 지정학적 위치는 공항을 중심으로 미래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를 인천의 지역성을 살리고 홀대를 극복하는 게 지역언론에 주어진 사명이라며 이는 인천의 언론을 중심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대중일보 기획 연재

본보는 이같은 인천시민들의 뜻을 모아 대중일보 기념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기로 했다. 본보는 지난해 대중일보 1945년 10월7일부터 1950년 5월말일까지 원본을 분석한 기사를 게재했다.

그 결과 대중일보는 정치, 행정, 경제, 사회는 물론 문화 체육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이 인천과 관련한 뉴스란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대중일보가 창간사에서 천명했듯이 인천의 소식을 우선적으로 다루겠다는 의지와 약속을 관철한 보도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중일보는 인천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담은 인천의 신문이었기 때문에 인천의 소식이 주 뉴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천일보는 이에 따라 대중일보 지면을 바탕으로 한 특집기획물을 학술연구단체나 인천지역의 시민단체 등과 함께 연재할 예정이다.

● 대중일보 기념사업회 활성화

본보는 인천에 본사를 둔 인천 연고의 언론사, 지역의 뜻있는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대중일보 기념사업회를 운영할 계획이다.

기념사업회 구성은 인천의 언론인들과 시민사회단체 누구든 가능하며 역사의 희생양으로 사라져간 대중일보의 정신, 인천언론의 정론직필 정신을 되살리는 사업을 하게 된다.

대중일보 기념사업은 72주년 기념식, 기념 심포지엄 개최, 대중일보 사옥 표지석 제작, 인천언론인의 날 제정, 인천언론인상 시상 등 다채로운 분야를 계획 중이다. 분기별로 정기적 모임을 갖고 구체적인 사업을 논의할 예정이며 이 사업회를 인천언론인 간 교류의 장으로 승화시킬 예정이다.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



중구 신포동 터 잡고 99% 인천 뉴스 … 유신정권 통폐합에 역사 속으로

인천의 자산 '대중일보'는 1945년 창간해 '인천신보'로 이름을 바꾼 1950년 9월 전까지 인천시 중구에서 발행한 신문이다. 인천에서, 인천사람들이 만든 인천지역 신문인 대중일보는 인천 신포동에 사옥을 마련하고 인천지역 인사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창간한 '인천의 대표언론'이자 국문을 기반으로 작성한 첫 신문이기도 했다. 창간사에서 "인천을 기반으로 한다"는 지역성을 확고히 명시하고 있는 대중일보가 다룬 뉴스는 99%가 인천관 관련한 뉴스였다.

대중일보는 인천의 지식인과 주요 인사들이 앞장서 창간했다. 일제강점기 때 신문 지국장을 지낸 송수안(1903~1983)을 비롯해 인쇄인 이종윤(1899~1967), 최초 미술사학자 고유섭의 숙부인 의사 고주철(?~?), 소설가 엄흥섭(1906~?) 등이 힘을 모아 대중일보를 발행했다. 엄흥섭이 초대 편집국장을 맡았으며 손계언(정경부장), 이원장(사회부장), 김도인(문화부장) 등이 부장으로 활동했다. 박성원, 송종호, 서봉도 등이 평기자로 현장을 누볐다. 이종윤의 아들인 이벽은 얼마 뒤 기자로 합류했다. 작가인 김도인은 '삼불당(三不堂)'이라는 소설을 연재했다. '인천석금'(인천 근대화 이모저모 소개 책)을 펴낸 고일도 잠시 편집국장으로 일했다.

이후 인천신보-기호일보-경기매일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하며 1973년까지 인천 중구 중앙동에 사옥을 두고 신문을 발행했느나 1973년 8월31일 박정희 군사정권의 언론통폐합으로 역사속에서 영영 사라졌다.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