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에 있는 방촌 황희 선생 영당. 후손들이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황금 대사헌'이라고 부른 까닭은

그는 청백리인가, 아니면 부패한 재상일까. 그는 대표적인 청백리로 꼽히지만, '대사헌 시절에 금을 받았다'고 해서 '황금 대사헌'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같은 엇갈린 평가 때문에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다. 세종실록에 전하는 사신 이호문(李好文)의 기록 때문이다.

"중 설우(雪牛)의 금을 받아서, 사람들이 '황금 대사헌'이라고 했다. 또 사람을 죽이고 달아난 난신 박포의 아내를 간통했으며, …<중략>… 정권을 잡은 여러해 동안에 매관매직하고 형옥을 팔아 뇌물을 받았으나, 그가 사람들과 더불어 의논하거나 혹은 질문에 대답할 때에는 언사가 온화하고 단아하며 의논하는 것이 다 사리에 맞아 임금에게 무겁게 보였다. 그러나 그의 심술은 바르지 아니하니, 혹시 자기에게 거스르는 자가 있으면 몰래 중상했다." -<세종실록>, 세종 10년 6월2일.

이런 인물평은 당대에도 논란거리였다. 세종실록을 편찬할 때 정인지는 "이 내용은 일찍이 내가 듣지 못한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했다. 하지만 사관의 기록을 삭제하는 것이 더 큰 화가 될 수 있어 그대로 실록에 실었다.

이외에도 홍유룡의 첩을 노비로 삼았다든지, 남원 부사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든지, 지인의 아들을 특채했다든지, 말을 많이 죽인 태석균을 봐달라고 압력을 넣었다든지 등도 논란이다.

또 처남이 죄를 짓자, 풍문일 뿐이라며 변명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태종과 세종은 '재상을 그렇게 대접해서는 안된다'며 대간을 누르고 문제 삼지 않았다. 이는 도덕적인 흠결에도 불구하고 신하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 세종의 실용적 리더십이 황희를 청백리 재상으로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글·사진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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