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행정능력·공정한 재판 보여줘
▲ 수원화성박물관 앞 뜰 야외 전시장에 선정비 10기가 서 있다. 중동사거리를 비롯한 수원의 곳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아뒀다.
# 이성적인 공직자 청백리 정신

파주의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에서 공직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청렴과 근면으로 봤다. 그는 관직에 나아가는 사람은 국가를 부강하게 하고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지, 자신의 부귀와 영화를 누리려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청렴한 공직자와 부패한 탐관오리에 대한 이야기는 중국 역사가 사마천이 쓴 〈사기〉에도 나온다.

사마천은 '순리열전'과 '혹리열전'에 공직자 18명이 일처리를 어떻게 했는지를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순리(循吏)가 법을 근본으로 삼아 나라를 공정하게 잘 다스리는 '좋은 관리', 즉 청백리라고 하면, 혹리(酷吏)는 비리와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데 앞장 선 '가혹한 관리', 즉 탐관오리라고 하겠다. 순리·혹리열전은 '공직직분을 다하고 이치를 따르는', 즉 봉직순리(奉職循理)를 이상적인 공직자 자세로 제시하고 있다.

"머리 위에 갓끈이 있으니 학문이 있고(文)/ 천지 이슬 마시니 맑음이 있고(淸)/곡식을 먹지 않으니 염치가 있고(廉)/거처할 집 짓지 않으니 검소하고(儉)/오고 갈 때를 지키니 신의가 있다(信)"

이 시는 중국 진나라 시인 육운(陸雲)이 '한선부(寒蟬賦)'에서 '매미의 5가지 덕목', 즉 청백리의 5가지 덕목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내용이다. 우리 선조들도 임금이 쓰던 익선관과 관리의 관모에 매미 날개를 만들어 문·청·렴·검·신(文·淸·廉·儉·信)을 청백리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생각하고 몸소 구현하고자 했다.

청백리는 '청렴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청렴결백한 부패하지 않은 관리인 청백리는 공무 능력뿐만 아니라 본인은 물론, 주변까지 청렴하고 깨끗한 생활을 한 관리였다. 백성을 돌보고 잘 살게 하려면 공직자의 정신과 행동이 밝아야 하는데, 그것을 밝게 해주는 것이 청백리 정신이다.

조선시대의 청백리는 도덕과 청렴뿐만 아니라 실제 민생 현장에서 뛰어난 행정 능력과 공정한 재판 등 전문 관료로서의 실무 능력을 보여줬다. 청백리들은 백성을 편하게 하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정책을 내놓는 등 백성을 위한 진정한 봉사자였다.

/글·사진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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