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의 고장 … 도내 곳곳이 '성지'
조선시대 200여명 중 60여명 포진
검소·충절은 기본 … 문무도 겸비
맹사성, 유유자적 소타고 다녀
이준경, 조정의 표준 백관중 으뜸
류관, 우산 정승 … 조경, 청문고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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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약용
▲ 이이
▲ 수원화성박물관 앞 뜰 야외 전시장에 선정비 10기가 서 있다. 중동사거리를 비롯한 수원의 곳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아뒀다.
▲ 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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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유사랑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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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곡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창건돼 1650년(효종 원년) 자운(紫雲)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은 파주의 자운서원 전경.


글 싣는 순서
1 청백리란 무엇인가
2 경기 청백리
3 경기 청백리 이야기 ①~⑨
4 경기 청백리의 현대적 계승과 콘텐츠 활용


경기도는 청렴결백한 공직자, 청백리의 고장이다. 조선시대 청백리 200여명 중 60여명이 경기도내 곳곳에 묻혀 있거나, 경기도를 생활의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다. 조선의 대표적인 청백리였던 방촌 황희, 오리 이원익 등은 파주, 광명에서 살았다.

여기에 안산과 파주, 남양주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성호 이익과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 등 경기출신 실학자들은 민생을 살리는 청렴한 공직자의 자세를 강조하고, 낡고 병든 조선 후기의 개혁방안을 내놓았다. 특히 다산은 공직자의 무능과 백성의 수탈을 목격하고 '목민심서'를 집필해 새로운 공직자상을 제시했다. 그런 만큼 경기도는 청렴의 성지라고 하겠다.


#경기 청백리

경기도는 청백리의 고장이다. 조선시대에 태조 때 청백리 1호로 뽑힌 광주 덕곡리의 사간공 안성(安星)을 비롯해 60여명이 경기도에 연고를 두고 있다.

조선 초기 격동기에 명재상을 지낸 방촌 황희, 40년 재상을 지냈지만 비 새는 초가집에서 산 청백명상(淸白名相) 오리 이원익, 유유자적 소를 타고 다닌 재상 고불 맹사성, 비 새는 초가집에 살면서 우산으로 빗물을 피해 우산 정승으로 불리는 하정 류관, 청문고절(淸文苦節)로 추앙받은 용주 조경, 조광조의 문하생으로 검소한 삶을 지향했던 인재 홍섬 등이 경기 청백리들이다.

여기에, 끝까지 수양대군을 내쳤던 충절한 청백리 청파 기건, 문무를 겸비한 원종공신 이계 신공제, 병석에서도 풍류를 즐겼던 재상 지족당 임호신, 조정의 표준이며 백관의 으뜸이었던 동고 이준경, 부자(父子) 청백리 이제신·이명준, 기녀의 내조로 재상이 된 건달 일송 심희수, 사치가 나라를 망친다며 검소한 삶을 산 기천 홍명하 등도 있다.

이들은 파주와 광주, 광명 등에 묘소나 생가 유적을 두었거나, 경기도에 삶의 근거를 두고 활동했다.

이들처럼 국가에서 선발된 청백리는 아니지만, 비공식적으로 칭송된 청백리들도 있었다. 또 백성들은 좋은 정치를 베푼 지방관에 대해서는 공덕을 기리는 선정비(善政碑)를 세워 칭송했다. 송덕비(頌德碑) 혹은 불망비(不忘碑)라고 부른다. 물론 일부 지방관은 자신의 치적을 홍보하기 위해 강압적으로 선정비를 세우기도 했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는 고관대작들이 별서를 두고 출입하던 지역이고, 은퇴하고 나서도 산 곳"이라며 "대부분 청백리에게 경기도는 생활의 근거지였다"고 했다.

#성호 이익의 청백리론

안산 출신 실학자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진상(進上)은 꿰미에 차고, 인정돈은 말 바리에 가득하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공적으로 나라에 바치는 물건보다 사사로이 주는 뇌물이 더 많다는 것을 이름한다"며 뇌물이야말로 나라가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뇌물이 아니면 이뤄지는 일이 없는 폐단을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지만 이를 시정하려는 사람이 없다"고 통탄했다.

조선 후기 백성들의 고혈을 짜는 과도한 세금 수탈과 함께 뇌물 수수의 만연은 나라를 도탄에 빠트리고 있었다. 그는 이런 모든 원인이 탐관오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보통사람이 남의 재물을 탐하면 그 피해는 몇 사람에 그치지만, 그런 사람이 수령이 되면 그 해독은 온 고을에 미치고, 관찰사가 되면 그 해독이 한 지방에 미친다"고 했다. 그는 "청백리를 뽑는 것이 모두가 지위가 높거나 죽은 사람에게만 해당되고, 지위가 낮은 관리들은 대상이 되지 않으니 이러고서야 장차 어떻게 세속을 권장하겠는가"라면서 죽은 사람에게 내리는 청백리는 '허명(虛名)'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대안으로 살아있는 사람을 고위직보다는 하위직에서 선발해 실질적인 혜택을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산의 공렴정신

다산 정약용이 낳고 자라고 묻힌 남양주 마재마을은 공렴(公廉)정신이 깃든 '청렴 성지'로 부각되고 있다. 다산이 부패한 관리를 고발하고 청렴한 목민관을 제시한 <목민심서>를 썼기 때문이다.

총 12편 72조로 구성된 48권의 방대한 분량이다. 목민관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 당시 낡고 병든 조선 후기를 개혁하고, 처참한 민생을 구제하려는 긴급 처방전이었다. 그 역시 '문과에 급제하고'라는 시에서 '공렴원효성(公廉願效誠, 공정과 청렴으로 지성껏 봉사하리)'라고 다짐했다.

그는 전남 강진 유배지에서 어느 백성이 가혹한 세금 수탈에 못견뎌 자신의 양근(陽根)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나서 '애절양(哀絶陽)'이라는 시를 남겼다.

조선의 농촌 백성들은 어린아이와 죽은 사람에게까지 세금을 징수 당해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다산은 "어느 것 하나 병들지 않은 분야가 없다(一毛一髮 無非病耳)"며,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조선은 반드시 망한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경기지역은 청백리를 낳고 키워냈으며, '청렴(淸廉)문화'를 싹틔고 뿌리내린 곳이다.

/글·사진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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