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관 최고의 임무·덕목
유교적 교양 명재상·선비
가문의 영광·관료의 명예
부정·부패 통제 수단 창안
▲ 청렴은 공직자의 으뜸가는 덕목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청렴하지 않으면 목민관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청렴결백한 공직자, 청백리를 선정해 부조리를 방지하려고 했다. 청백리는 추운 겨울에도 푸르른 소나무처럼 꿋꿋하게 청렴함을 지켜낸 이상적인 공직자의 표상이었다. /그림=유사랑 화백
▲ 광주시 중대동 덕곡마을 입구에 세워진 조선시대 청백리 1호로 녹선된 사간공 천곡 안성의 추모비.
▲ /목민심서=실학박물관 제공
▲ /청선고=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글 싣는 순서
1 청백리란 무엇인가
2 경기 청백리
3 경기 청백리 이야기 ①~⑨
4 경기 청백리의 현대적 계승과 콘텐츠 활용

'국민은 정직한데 권력은 부패했다.' '돈과 권력을 쥔 이들의 부패가 되풀이되고 있다.'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뿌리깊은 나라.' 최근 '국정농단 촛불 집회'와 관련, 해외 언론이 평가한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성난 촛불민심이 부패한 어둠을 드러내고 있다. 권력의 심장부는 '불타는 수레'로 단죄를 받고있다.

부패한 권력은 국가시스템마저 무너트린다.

우리는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우리사회에 청렴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조선시대의 이상적인 공직자인 청백리를 재조명하고 그 정신을 재발견하고자 한다.


#청백리의 의미와 의의

'청백리(淸白吏)'는 청렴결백(淸廉潔白)한 이상적인 공직자를 말한다. 엄밀히 말하면 조선시대에 국가가 선발해 청백리안(淸白吏案)에 명단을 올린 사람을 지칭한다. 그러기에 관료의 명예요, 가문의 영광이었다.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칭송받았다.

청백리에 대칭되는 부정부패한 관료는 탐관오리 혹은 '장리(贓吏)'라고 불렀다. 탐관오리로 탄핵을 받거나 처벌받은 관리들은 장리안(贓吏案)에 수록해 더이상 관직에 나갈 수 없도록 했다. 그 자손도 과거를 보지 못하게 했다. 그 만큼 청백리와 탐관오리에 대한 관리제도는 엄격했다.

조선의 청백리 제도는 부조리를 방지하기 위한 사회기풍의 진작, 민심의 순화, 민생구제 그리고 행정관료의 통제수단으로 창안됐다. 특히 조선시대 지방수령은 왕권을 위임받아 행정과 사법, 군사권력을 총괄했다. 지방수령이 선정을 펴면 국왕이 선정을 펴는 것이고, 부패하면 국왕이 부패한 것으로 인식됐다. 지방권력의 전권을 가진 수령에게 높은 도덕성과 청렴함을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한 이유이기도 하다.

청렴을 해치는 부정이나 부패의 유형은 두가지다. 첫째는 위정자나 관리들이 그들에게 부여된 권한을 남용해 백성들을 직접 수탈하는 가렴주구이며, 둘째는 직무와 관련해 불공정한 특혜를 준다든지 불법이나 비위를 묵인해 주고 이권에 개입해 뇌물을 챙기는 일이다. 전자가 전통시대 관료의 부패유형이라면, 후자는 오늘날 공직자의 부패유형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청렴한 공직자와 공정한 사회를 갈망한다. 그래서 역대 정부마다 반부패 정책과 제도를 내놓았다. 하지만, 부패는 탄성을 가진 용수철처럼 다시 원상태로 회귀를 반복했다. 부패척결을 외쳤지만 반짝 구호에 그치고 나아진 게 없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오늘날 부정청탁 금지법이라고 할 수 있는 '분경금지법(奔競禁止法)'이 있었다. 분경(奔競)이란 벼슬을 얻기 위해 권세있는 사람을 분주히 찾아다닌다는 의미다. 분경금지법은 하급관리가 상급관리의 집을 방문해 인사청탁을 하지 말라는 법이다. 어긴 사람은 곤장을 맞고 유배를 당했다. 그러나 관리들이 표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몰래 청탁하고 행적을 감추어버렸다. 이에 나중에는 시기와 대상을 축소했지만, 결국 이 법도 크게 효과를 보기 못했다.

#청백리의 덕목, 청렴

조선시대 숙종대 영의정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이 살아 있는 사람은 염근리(廉謹吏)로, 죽은 사람은 청백리(淸白吏)로 구분했다. 일반적으로 염근리와 청백리를 넓은 의미의 청백리로 통칭했다. 조선의 관료는 수기치인의 유교적 윤리와 교양을 익혔으며, 예의염치와 청렴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다. 그럼 청렴(淸廉)은 어떤 상태이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다산 정약용은 "청렴이란 목민관의 근본되는 임무이며, 만가지 착함의 원천이고, 모든 덕의 뿌리(廉者牧之本務 萬善之源 諸德之根)"라고 했다. 이는 '마음을 맑게 하라'(청심 淸心)며 공직자의 철저한 자기관리를 주문한 말이다. 다산은 청백리를 3등급으로 나누면서 "봉급 외에는 아무것도 받지 않고, 먹고 남은 것은 집에 두지 않으며, 벼슬을 그만 두고 돌아 갈 때 한 필의 말로 조촐하게 가는 자가 최상의 청렴한 관리"라고 했다.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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