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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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있는 한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최순실 국정 농단을 놓고 해외언론 역시 큰 관심을 나타내며 현지에서 잇따라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그가 한 첫 마디는 '너무 창피하다'였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후진국 수준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창피하다'는 그의 말은 외국이 아닌 이 땅에 살고 있는 평범한 시민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국격(國格)이라는 말은 곧 나라의 품격이라는 뜻이란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국격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흘러 나왔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 G20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각국 정상들이 서울로 몰려들면서 정상회의 이후에는 우리나라 국격이 보다 높다졌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후 대대적인 국제회의가 잇따라 국내에서 열리기도 하며 국격에 대한 찬사가 앞다퉈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삶의 질과 국격 높은 복지국가를 강조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격은 지금 어디에 있나. 그리고 누가 국격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나.
우리나라 국격을 떨어뜨린 것은 시민들이 아니었다. 국격을 먼저 이야기한 지도자들이 어이없는 판단과 행동이 원인이었다.

대한민국 국격이 높아졌다지만 이른바 우리나라 지도자들의 품격은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보통 사람들의 삶은 고단하다. 출근을 위해 만원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지친 몸을 달래기도 전에 업무와 전쟁 한판을 벌여야 한다.
야근도 부지기수다.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이 나를, 내 가족을, 내 회사를, 대한민국을 보다 잘 되게 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고 산다.

직장을 구하려는 젊은이들은 밤낮없이 책과 씨름하는가 하면 직장 내 비정규직들도 정규직을 향한 꿈을 꾸며 쓴맛을 하루하루 넘기고 있다.
누군가는 와 닿지도 않는 국격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늘 그랬듯 하루하루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순실 국정 농단은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허탈함과 배신감을 안겨주는 비상식적인 사건이었다.

국민들이 하루하루 어렵게 쌓아놓은 국격이라는 공든탑을 누가 무너뜨렸는지.
우리나라 교역액이 얼마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등등. 보통 사람들은 이처럼 우리나라는 진일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지도자들의 품위는 국격을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2012년 10월 여당 한 중진의원은 국가 최고지도자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국가최고지도자가 위기 상황을 어떻게 관리하고 극복하는 지에 따라, 한 국가의 운명이 좌우된다고. 그만큼 지도자 역할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유례없는 정치적 공황상태가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흔들림 없이 버티며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도 국민 한사람 한사람 때문이다.
지도자들이 단 한순간 무너뜨린 국격을 국민들은 평화시위로 다시 하나하나 쌓아올리고, 각자 셈법에 여념없는 국회를 탄핵 가결로 이끌었다.

더 이상, 일부 인사들로 인해 나라가, 국민이 창피를 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 이상, 국격을 시민들에게만 기대서도 안될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일터에 나와 내 일을 할 것이다.
결코 국격을 위해서가 아니다. 나와 내 가족, 내 아이가 살아갈 이 땅을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