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출신' 김중미 작가 장편소설 … 고양이 통해 타인의 슬픔·아픔 공감
▲ <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김중미 낮은산 280쪽, 1만1500원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아이들을 통해 희망을 길어올리는 인천이 낳은 소설가 김중미가 새 책을 펴 냈다. <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낮은산·280쪽)는 고양이들을 통해 본 타인의 슬픔과 아픔에 공감하는 장편 소설이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이제야 고양이들을 통해 진짜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찾은 것 같다. 어쩌면 떠나보낸 이들에 대한 씻김굿 같기도 하고, 남은 이들끼리의 다짐 같기도 한…."

김중미의 탈고 뒤 소감처럼 작가는 책에서 우리시대의 교감하는 방식, 소통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세상에서 상처받고 사람 때문에 다친, 저마다 아픈 사연을 지닌 고양이들을 통해 타인의 슬픔과 아픔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말의 힘, 소통의 힘이 얼마나 큰지, 우리가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소중한 진실을 깨닫게 된다. 김중미 작가는 가장 어리고 약한 존재에게서 희망을 발견해낸다. 그리고 그 희망을 나누고자 고양이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냥 모르는 척하고 싶었어. 안 보면 덜 힘드니까."(새끼 잃은 고양이와 엄마 잃은 아이)
고양이는 어느 날 갑자기 새끼들을 다 잃었다. 늘 배고프고 누군가에게 쫓기며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던 삶이었다. 길고양이들에게는 길에서 죽는 일만큼이나 새끼를 잃거나 어미를 잃는 일도 흔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연우는 엄마를 잃었다. 엄마는 힘들게 일하느라 늘 바빴고, 연우와 함께할 시간이 늘 부족했다. 엄마가 왜 그렇게 갑자기 죽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연우는 마음을 닫고 스스로를 가뒀다.

은주는 오랫동안 살아온 작은 집과 평화로운 일상을 잃었다. 부모님이 평생 애쓰며 일궈 왔던 삶의 터전이 재개발 바람에 무너져 내렸다. 저항하고 싸워 봤지만, 남은 건 뿔뿔이 흩어진 가족과 깊이 상처받은 마음뿐이다.

이 세상의 전부라 여겼던 소중한 존재를 잃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있을까? 너무나 괴로워서 외면하고 싶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믿고 싶은 그 고통에 대해 김중미 작가는 끝까지 이야기한다. 타인의 슬픔과 아픔을 들여다보자고,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고, 그렇게 함께 힘을 내 보자고 손을 내민다.

#"네가 왜 슬픈지 알고 싶어. 나한테 말해 줄래?"(슬픔과 아픔 나누는 법을 아는 고양이들)
연우네 집으로 고양이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시장 골목에서 쓰러져 연우네로 오게 된 모리, 앞을 못 보게 된 고양이 크레마, 버림받은 고양이 마루, 엄마 잃은 아기 고양이 레오까지. 저마다 아픈 사연을 지닌 고양이들이 다시 한 공간에서 만나 서로 이야기하는 법을 배워 나간다.

엄마가 떠나고 난 뒤 우리는 각자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슬픔을 한 아름씩 끌어안은 채 각자가 견뎠다. 그 시간들은 숨이 막히도록 답답했고 무거웠다. 아빠와 외할머니가 그렇게 견디고 있으니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슬픔도 고통도 함께 나누면 덜어진다는 것을 몰랐다.

고양이들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털을 골라 주며 소통을 한다. 그런 고양이들에게 서로 말하지 못하고, 감정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마음을 열고 서로 눈을 맞추고 자기 마음을 솔직히 이야기하는 이 단순한 방법만이, 어렵지만 조금씩 상처를 치유해 준다는 걸 고양이들은 알고 있다. 그래서 고양이들은 은주에게, 연우에게 말을 걸어 보기로 한다. 위로해 주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마음을 열어 봐. 그럼 들릴 거야."(고양이와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연대의 이야기)
연우가 마음을 열고 고양이와 눈을 맞추는 순간, 기적은 일어난다. 고양이 말이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연우와 고양이가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연우 눈에 보이는 세상이 달라진다. 마음을 닫고, 시선을 외면하고 살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소리와 말과 시선들을 그냥 흘려버리며 살았을까? 내가 무심코 흘려버린 타인의 울음소리와 신음 소리는 없었을까? 먼저 말을 걸어 준 고양이 덕분에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내가 맺고 있는 관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김중미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매화와 벚꽃이 한창인 마당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막내 고양이 레오가 다가왔다. 레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나를 올려다보며 야옹거리기 시작했다…, 문득 레오가 내게 위로를 건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다시 고양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아니, 고양이 이야기가 아니라 슬픔과 아픔을 나누는 법을, 기억하는 법을 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작품을 쓰기 전과 쓴 뒤의 나는 또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귀가 더 열리고, 마음이 더 열렸다. 그것은 순전히 말의 힘, 소통의 힘이다"고 말했다.
1만1500원

/김칭우 기자 ching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