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자부심이 만들어 낸 자동차문화 즐기는 곳"
▲ 장성택 BMW 그룹 코리아 상무가 중구 영종도 BMW 드라이빙센터내 전망대에서 핸들링 코스에서 질주하고 있는 BMW차량을 소개하고 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평일 오후 왕복 8차선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엔 막힘이 없었다.

도심 속에서는 좀처럼 어려운 혜택을 누리며 영종도 BMW 드라이빙 센터에 도착했다.

BMW 그룹 코리아 장성택(54) 상무는 "영종도에서 BMW 신차를 인수한 고객이 트랙에서 성능을 마치고, 뻥뚫린 고속도로로 돌아간다고 생각해 보라. 서울에선 꿈도 못 꿀 일"이라며 맞았다. 손목에서 딱 떨어지는 검은정장 안에 흰셔츠를 받쳐 입은 신사는 악수하자며 손을 뻗었다.

9월1일 수입차 업계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기계분야 자동차 정비 직종에서 명장으로 선정된 장 상부는 기름때와 거리가 먼 사람처럼 보였다. "직책은 상무지만 그룹에서 간부나 경영진 같은 건 아니다. 고맙게도 사내에서 숙련인으로 인정받아 영종도 센터를 총괄하게 된 것이다. 센터 자체가 기술 집약체라 그에 어울리는 직원들을 쓰고 있다."

● 독일, 미국 그리고 한국 단 세 곳

센터 한해 운영비만 130억원인데, 입장 수입은 30억원. 단순 계산으로 매년 100억원 적자. 세계 정상급 자동차 기업의 이 수지 안 맞는 장사는 올해로 2년째다.

장 상무는 "자동차 기업이라면 소비자를 위해 맘껏 자동차 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기업이라는 큰 그림을 보면 모든 영역에서 흑자가 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트 시식코너처럼 먹어봐야 믿고 사는 우리들인데, 나중엔 이곳을 체험해 보고 구입해 가는 진정한 '자동차 복합 문화 공간'으로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센터를 찾아 얼마 정도 값을 치르면 트랙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BMW에서 제공하는 차량을 타고 물 뿌린 트랙 위를 달리다 일부러 미끄러지거나 철길, 통나무길, 측면 비탈길 등 인위적인 험지 환경에서 탈출하는 구성이 준비돼 있다. 실제에서야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지만 미리 배워두면 대처할 수 있다.

2.6㎞ 구간을 반복 주행하면서 끝을 모르는 가속과 제동, 급회전을 해볼 수 있는 코스도 있다. 이용료는 차량별로 6만원에서 10만원이며 예약을 해야 한다.

장 상무는 "스스로 만든 제품을 혹독한 시련에 내던지고 고객들에게 체험하게 하는 건 기술에 자부심 없이는 어려운 일"이라며 "사실 센터 계획하면서 서울 주변으로 후보 부지만 16곳이 넘었는데 최종적으로 미래 가치 높은 영종을 선택하길 잘한 거 같다"고 했다.

본사는 물론 주변에서 작은 한국시장에 드라이빙 센터가 웬 말이냐며 난색을 표할 때, "한국에도 즐거운 자동차 문화가 필요하다"며 우긴 게 장 상무였다.

센터 전체 면적은 24만㎡로 축구장 약 33개 규모다. 2014년 8월22일 문을 열었다. 드라이빙 트랙 설치는 아시아 최초이자, 독일과 미국에 이어 세계 3번째다.

● "내 시행착오 후학이 겪지 않길"

1970년 경상북도 경주 장 상무 살던 동네에는 가끔씩 나무 실은 트럭이 다녔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트럭 바퀴에 흙이라도 묻어 있으면 그는 개울 물에 입던 옷 적셔 닦았다. "트럭 기사들은 신기한 꼬마라고 했지만 쇳덩이가 내는 소리에 신기했고 배기가스 냄새도 구수해 좋았다"고 회상했다.

끼니 걱정하는 가정에 4형제 중 막내로 자라며 우여곡절도 많았다. "배 타면 사는 게 좀 낫다"는 주변 권유로 포항 수산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가 고3 승선 실습 때 도망쳤다. 대학에 가기로 마음먹고 공부해 당시 국립 중앙직업훈련원(폴리텍2대학·인천 부평) 자동차과에 진학했다.

"학비야 나라에서 대줬지만 주말엔 기숙사 식사가 안 나와 주변 농촌에서 농기계 수리해주고 밥 해결하던 힘든 시절"이라며 "경운기 수리 후 엔진 돌리다가 이빨 4개가 부러져 몇 달 동안 앞니 없이 생활하기도 했다"고 했다.

이 시기는 밑거름이 됐다. 1986년 현대자동차 수출정비부에 입사해 해외 주재원 등으로 활동하며 갤로퍼 생산에 동참했다. BMW가 한국 현지법인 지사를 설립한 1995년엔 정비 기술을 담당하는 기술자로 자리를 옮겼다.

입사 4년 후인 1999년 청와대 경호실에 BMW 의전용 차량이 처음으로 공급될 땐 '핵심기술 자문 위원'으로 위촉될 정도로 기업 내에서 '기술통'으로 자리매김했다.

"앞선 독일 기술을 국내 기술진들이 흡수하기 위해선 체계적인 양성이 필수라고 생각했다. 2002년엔 사내 기술자격 제도를 창안해 5가지 등급에 의한 기술능력 인정 시험과 함께 자격증을 부여했다."

이 제도는 2006년 차량 업계 최초로 노동부의 '사업 내 자격검정 인정 증서'를 인가받았다. 장 상무를 비롯, 자동차 정비 직종에서 대한민국 명장은 13명 정도다. 수입차 업계에선 그가 유일하다. 대한민국 명장은 기술인의 최고 영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22개 분야 96개 직종을 대상으로 최고 숙련기술을 보유한 사람만 선정한다. '노력을 능가하는 재능은 없고, 노력을 외면하는 결과도 없다'는 말을 아직까지 하늘처럼 떠받들고 살고 있다고 했다.

"옛 어른들은 공부 못하면 기술 배우라고 타박했지만, 기술이야말로 죽을 만큼 노력할 각오 없으면 공부하는 게 나은 분야"라며 "스스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아팠지만 자동차 기술을 배우는 후학에겐 적어도 내 고초를 모르게 하는 것이 앞으로의 숙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고향은 아니어도 끈끈한 인천

19살 포항 수산 고등학교를 뛰쳐나와 당시 부평에 있던 중앙직업훈련원(현 폴리텍2대학)에 입학하면서 인천과 연을 맺게 됐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현대자동차 수출정비부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지인 소개로 만난 지금의 부인도 인천 출신이다. BMW에 입사한 직후인 1996년 당시 주안에 있던 회사 교육장으로 발령받아 10여년 간 인천에서 일했다.

퇴직 후엔 기계분야 자동차 정비 교육 센터를 세워 국내 자동차 기술 발전에 일조하고 싶다는 게 그의 남은 꿈 중 하나다.

"인천은 울산, 마산과 함께 자동차 관련 시설이 잘 갖춰진 몇 안 되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만 2만여 개인데 인천에는 차량과 관련된 부품 업체들이 특히 많다. 이런 지역일수록 기술이 바탕이 되는 인재 육성에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원진 기자 kwj799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