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화 경기본사 문화부장
# 부정청탁 금지법과 분경 금지법=부정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달포가량 지났다. 정식 명칭인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강력한 반부패 제도다. '3-5-10' 원칙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제자가 스승에게 캔 커피를 전달해도 되는지' 등 아직도 여기저기서 이러저런 혼란을 겪고 있다. 씁쓸하지만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계기라는 데 동의하는 분위기다. 부정청탁이나 떡값, 향응보다는 공정하고 투명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청렴문화를 확산시키는 전환점이라는 것이다.

우리사회에는 혈연과 지연, 학연 등을 통한 부정한 청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반칙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뿌리 깊게 자리잡았다. 이는 부패 발생의 주요 원인이었다. 우리는 청렴한 공직자와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를 갈망한다. 역대 정부마다 반부패 정책과 제도를 내놓았지만, 부패는 탄성을 가진 용수철처럼 다시 원상태로 회귀를 반복했다.

조선시대에도 오늘날 부정청탁 금지법이라고 할 수 있는 '분경금지법(奔競禁止法)'이 있었다. 이 법은 엽관(獵官)운동과 청탁을 막기 위해 하급관리가 상급관리의 집을 방문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으로, 위정자들의 승진운동을 막는 제도다. 동성 8촌 이내, 이성·처친(妻親) 6촌 이내, 혼인한 가문, 이웃 사람 등이 아니면서 출입하는 자는 승진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간주해 곤장 100대를 맞고 3000리 밖으로 유배당했다. 그러나 관리들이 표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몰래 청탁하고 행적을 감춰 크게 효과를 보지 못하자 나중에는 시기와 대상을 축소했다.

# 절대부패 겨우 벗어난 국가 청렴도=국제투명성기구(TI : Transparency International)는 매년 국가별 청렴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부패인식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TI는 관리의 뇌물수수, 공공획득사업 커미션, 공공자금 횡령, 공공반부패노력의 효율성 등 크게 4가지로 나눠 조사한다. 지난해의 경우 한국은 부패인식지수 100점 만점에 56점을, 168개국 가운데 37위를, OECD 34개국 가운데 27위를 기록했다. 이는 투명한 사회로 평가받는 지표인 '70점'에 크게 못 미친다. 50점은 절대부패한 정도다. 한국이 받은 56점은 절대부패로부터 갓 벗어난 정도다.

역대 정부마다 부패척결을 외쳤지만 나아진 게 없다. 특히 공공기관의 청렴 수준이 최근 몇 년간 답보 상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일반국민 57.8%가 '공직사회가 부패하다'고 응답했으며, 부패발생 원인은 '부패 유발적 사회문화'를 꼽았다. 효율적인 행정감시제도나 투명한 국가경영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청렴문화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다.
청렴(integrity)은 부정부패가 없는 상태로서 정직·신뢰·공정·객관·정의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청렴은 좁게는 전통시대부터 공직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정신과 태도를 말한다. 청렴한 사회는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 정의가 실현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부패(corruption)는 정치, 사상, 의식 따위가 타락함을 뜻한다. 이는 공적 지위나 권한을 사적으로 남용하는 것을 말한다. 공익과 사익 사이에서 사익을 우선함으로써 공직을 그 수단으로 전락시킨다는 말이다. 부패에 이르게 하는 사회문화와 개인윤리의식 부재, 고비용 정치구조 등을 부패발생 원인으로 꼽는다.

#청백리와 탐관오리=또다른 반부패 제도가 조선시대의 청백리 제도다. '청백리(淸白吏)'는 청렴결백한 이상적인 공직자를 말한다. 국가에서 선발했기에 관료의 명예요, 가문의 영광이었다. 청백리에 대칭되는 부정부패한 관료는 탐관오리 혹은 '장리(贓吏)'라고 불렀다. 탐관오리로 지목돼 탄핵을 받거나 처벌받은 관리들은 장리안(贓吏案 탐관오리 관리대장)에 수록돼 본인의 관직생활이 막히는 것은 물론, 그 자손들이 과거를 보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 만큼 청백리와 탐관오리에 대한 관리제도는 엄격했다.

청백리 정신은 시대와 공간을 넘어 보편적 가치를 지니기에 오늘날 새롭게 새겨야 할 정신이다. 우리사회가 공정과 청렴을 지향하기에, 조선의 이상적인 공직자인 청백리를 재조명하고 그 정신을 재발견하는 일도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우리는 부패를 방지하고 청렴을 장려하기 위해 급기야 '김영란법'까지 내놓았다. 그런데 청렴을 해치는 부정부패는 예나 지금이나 도둑처럼 은밀하게 일어난다. 정치인과 공무원, 기업인 등이 저지른 각종 비리가 오늘도 터져 나온다. 이런 부패는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국가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 대다수 국민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준다. 부패한 사회는 결국 대통령까지 연루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처럼 국가 시스템까지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 '자서(自序)' 중에서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이익을 취하는 것에 급급하고 백성을 부양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며 '목민관은 자기만 살찌우니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라며 조선 후기의 부패상을 고발했다. 이같은 지적은 200여 년이 지났건만 전혀 생경하지 않는 기시감은 '현대판 탐관오리들'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