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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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월간 <말>지에 '보도지침' 관련 특집기사가 실렸다. 보도지침은 정부가 언론사에 보도의 방침을 내린 문서였다. <말>지는 문화공보부가 각 언론사에 시달한 보도지침 584건을 고발했다. 특집기사는 그동안 정부가 사건·사태 등과 관련한 보도를 '가' '불가' '절대불가'로 구분하고 보도 방향과 형식까지 구체적으로 결정해 시달했다고 폭로했다. 정부가 국민의 입과 귀인 언론사를 틀어쥐고 정부 입맛에 맞게 '명령'을 내린 것이다. 보도지침 특종기사를 쓴 <말>지는 해직기자단체인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가 1985년 창간한 잡지였다.

민언협은 1970년~1980년대 초반 독재정권에 저항하며 언론자유를 외치다 해직된 기자들의 모임이었다. 사건을 폭로한 김주언 기자를 포함해 <말>지 관계자들이 국가보안법 위반과 국가모독죄로 구속됐다. 그 이듬해인 1987년 6월10일 '6월항쟁'이 일어나고 이에 놀란 정권은 '6·29선언'을 통해 '언론자율화'를 발표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정당성이 없는 정권이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언론'이다. 얼마전 쿠데타가 발생한 터키가 뉴스룸에 들어가 생방송을 중단시킨 영상이 토픽으로 방영됐다. 언젠가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방송에 느닷없이 군인이 등장해 마이크를 빼앗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권력이 언론을 장악하려는 것은 언론을 통제해야 국민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크게 두 차례의 언론통폐합이 진행됐다. 1980년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 정권은 '언론계 구조 개선'이란 명분 아래 신문과 방송을 통폐합한다. 말이 통폐합이지 말 안 듣는 기자를 제거하기 위한 언론공작이었다. 전국의 신문·방송·통신사 가운데 45개사가 사라지고 1200여 명의 언론인들이 거리로 쫓겨났다.

앞서 유신 직후인 1973년에도 통폐합사건이 발생했다. 집권초기부터 다각도로 언론을 통제하던 박정희 정권은 1971년 12월17일 '언론자율정화에 관한 결정사항'을 발표한다. 언론사들의 '자율결의'란 형식을 빌었지만 프레스카드제 도입을 통한 기자숫자 제한, 지역언론 취재와 보급활동을 크게 제한하는 조치였다. 이후 지역의 언론사들이 자진 폐간하거나 통폐합되며 하나 둘 씩 사라져 갔다. 점차 고삐를 죄어오던 마수가 마침내 인천에까지 뻗친 때는 1973년 8월이었다.

당시 인천에 본사를 둔 신문사이자 사세가 큰 신문사는 '경기매일신문'과 '경기일보'였다. 경기매일신문은 광복 이후 인천 최초의 민간신문인 '대중일보'의 후신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신문사들이 수원에 본사를 둔 '연합신문사'에 강제 통폐합된다. '경기매일신문' 편집국장이던 고 김형희씨는 회고담에서 송수안 사장과 함께 인하공사(중앙정보부 인천분실)로 끌려가 군인들로부터 폭행을 당한 뒤 3사통합 서류에 도장을 찍었음을 고백한 바 있다. 경기매일신문과 경기일보 기자는 물론, 임직원 상당수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다.

해직보다 더 아픈 기억은 통폐합 이후 언론자율화가 실시된 1988년까지 15년 간 인천은 입이 있어도 말 하지 못 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 하는 '암흑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작고한 원로언론인 김상봉 선생은 "자신들의 의지도 아니고 정부에 의해 강제통폐합된다는 사실은 언론인으로서도, 지역으로서도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정부기관에 끌려가 갖은 협박과 회유 속 억지로 통폐합에 서명했던 경기매일신문 송수안 발행인조차 나중에 통폐합 무효선언을 했고 우리는 통폐합된 경기신문 불매운동을 벌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렇게 아픈 역사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대중일보가 10월7일 창간 71주년을 맞았다. 인천에 본사를 둔 언론인들은 매년 이맘 때 한 자리에 모인다. 대중일보, 경기매일신문 등 인천언론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기 위해서다. 9월22일에도 인천에 본사를 둔 신문·방송 6개사 기자들이 모여 기념사업을 논의했다. 인천의 언론인들은 이번 모임에서 대중일보 역사는 오직 인천의 역사이며, 진실은 하나라고 입을 모았다.

중국이 국제관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령하려고 고구려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라며 '동북공정'을 주장하지만 이를 수긍하는 사람은 중국의 일부 궤변론자들 뿐이다. 인천 언론인들은 강제통폐합 당시의 아픔을 생생히 기억해 '인천언론주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인천사 바로잡기', '인천정체성 찾기'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현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