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군 지도자 "모든 피해자에게 사과", 대통령 "민주주의로 온 것 환영한다"
협정서명 총알 녹여 만든 펜 "총알은 우리의 과거를 기록…교육은 우리의 미래"

콜롬비아 정부와 콜롬비아 최대 반군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이 52년간의 내전을 끝내는 역사적인 평화협정에 공식 서명했다.

FARC 지도자 로드리고 론도뇨(일명 티모첸코)와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콜롬비아 북부 해안도시 카르타헤나에서 열린 서명식에서 차례대로 협정에 서명했다. 이에 앞서 이들은 지난달 평화협정에 상호합의했다.

콜롬비아 정부는 이날 서명된 평화협정안을 내달 2일 국민투표에 부치며, 국민투표에서 '찬성' 의견이 많으면 평화협정이 공식발효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스페인 전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 중남미 각국 정상,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등 하객 2천500여 명 앞에서 론도뇨가 먼저 총알 탄피를 녹여 만든 펜으로 협정에 서명했고, 이어 산토스 대통령이 같은 펜으로 사인을 남겼다.

지난달까지 3년 9개월간 이어진 콜롬비아 정부와 FARC의 평화 협상 장소를 제공했던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도 행사에 참석해 역사적 현장을 지켜봤다.

펜은 실제 전투에서 사용된 총알의 탄피로 만든 것이며 앞서 산토스 대통령은 "우리는 총알로 만든 펜으로 서명할 것이다. 총알이 교육과 미래로 전환하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펜 손잡이에는 "총알은 우리의 과거를 기록했다. 교육은 우리의 미래다"라는 문장이 스페인어로 적혔다.

이날 청중 일부는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였고 객석에선 산토스 대통령과 론도뇨를 향해 "포옹하라"는 외침도 들려왔다.

297쪽짜리 협정문에 서명을 마친 산토스 대통령은 자신의 옷에 수년간 끼우고 다니던 평화를 상징하는 하얀 비둘기 배지를 떼어 내 론도뇨에게 건넸고 론도뇨는 이를 가슴팍에 끼우고 환히 웃었다. 이어 두 사람은 악수하며 서로 어깨를 두드렸다.

잠시 후 제트기 다섯 대가 행사장 위를 비행하며 콜롬비아 국기의 색깔인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 연기를 뿜어 하늘을 장식했다.

이날 거의 모든 하객은 평화를 뜻하는 하얀색 옷을 입고 와달라는 콜롬비아 정부의 요청에 따라 복장 색깔을 흰색으로 통일했다.

반 총장은 축사에서 "콜롬비아 만세, 평화 만세!"를 외쳐 평화협정 서명을 축하했다.

론도뇨는 "FARC의 전사들은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탄압받는 이들의 영웅이었다"면서 "우리가 전쟁 중에 초래했을지도 모르는 모든 고통에 대해 모든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가 무기를 놓고 정치 속으로 들어가는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협정을 지킬 것이며 정부도 준수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산토스 대통령은 "우리 조국의 수장으로서 나는 FARC가 민주주의로 온 것을 환영한다. 이 협정으로 콜롬비아에선 젊은이, 죄 없는 자, 군인, 반군의 죽음이 멈출 것"이라며 "10월 2일 있을 평화협정에 대한 국민 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져 달라"고 촉구했다.

협정에 서명함에 따라 FARC는 앞으로 정당 등 정치적 결사체로 재출범할 예정이며 180일 안에 유엔에 무기를 넘기고 무장 해제를 완료해야 한다. 론도뇨는 계속해서 FARC를 이끌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는 평화를 달성한 콜롬비아에 지원을 약속했다. 미국은 평화협정 이행을 위해 3억9천만 달러(약 4천325억 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은 협정 서명과 동시에 FARC를 테러 조직 목록에서 일시적으로 제외했다. 2002년부터 EU의 테러 조직 목록에 포함된 FARC는 6개월간의 검토를 거쳐 목록에서 완전히 삭제될 수 있다.

콜롬비아 정부는 제2 반군 조직인 민족해방군(ELN)에 대해서는 "납치를 중단해야 한다"며 아직 ELN과 평화 협상을 시작하지 않고 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FARC는 1964년 농민 반란으로 시작해 52년간 정부군과 내전을 벌였다. 지금까지22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8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평화협정은 공식 서명식에 이어 내달 2일 치러지는 국민 투표를 앞두고 있다. 최근 콜롬비아 최대 주간지 '라 세마나'의 설문조사에선 국민 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응답자가 72%에 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