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화 경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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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만(灣)=경기만은 경기도와 인천시의 서쪽 한강 하구를 중심으로 북쪽의 황해도 장산곶과 남쪽의 충남 태안반도 사이에 있는 반원형의 만을 말한다. 평화로울 때는 교역의 바다였고, 위기상황에서는 전쟁의 바다였다. 삼국시대부터 문화와 문물을 교류한 역사의 현장이고, 한반도 해육교통의 중핵(core)이었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항해시대에는 침략세력의 무력 진출 창구였다. 개화의 현장이고 제국주의 침략의 통로였다. 오늘날 서해 5도는 남북한이 대립하는 세계적인 분쟁지역이다.

경기만은 '경기도의 정신'이 깨어난 곳이다. 원효가 경기만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육지와 바다, 큰 하천을 모두 끼고 있어 사통팔달로 열려있는 문화 고속도로였다. 그래서 정신이 개벽하고, 문명이 소통했다. 이제, 경기만은 냉전에서 열정의 시대를, 군사에서 경제의 시대를 맞아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삶이 들끊는 바다의 실크로드로 재해석해야 한다.

#경기만 에코뮤지엄=경기도가 내륙 중심에서 해양의 열린공간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경기도가 올해부터 '경기만 에코뮤지엄'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 경기만 일대를 생태와 역사, 예술이 어우러진 '지붕없는 박물관'으로 꾸미겠다는 것이다. 경기도와 함께 안산·시흥·화성시는 2018년까지 통합브랜드를 개발하고, 에코뮤지엄 컬렉션 100선을 선정해 사이버 인문지리지를 제작하는 등의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육지가 아닌 해양의 관점에서 보면 바다는 다시 보인다. 대륙은 바다 수면 위에 잠시 솟아 있는 땅 덩어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이 <경세유표(經世類表)>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섬과 바다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면 백성과 국가의 부를 살찌울 수 있다. 죽음의 바다가 아닌 생명의 바다, 세월호의 바다가 아닌 이순신의 바다, 정약전의 실학의 바다가 보인다. 경기만을 다시 봐야하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경기만 에코뮤지엄에 거는 기대가 크다.

#기억의 보존과 상처의 치유=에코뮤지엄은 설립 취지나 주요 테마, 운영방식에 따라서 농촌형과 산업유산형, 자연환경형, 역사문화형, 테마파크형 등 5가지로 나눈다고 한다.

경기만은 이같은 5가지 유형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자산을 두루 갖추고 있다. ▲지역의 문화원형을 보존 간직하고 있어 농촌형이 가능한 풍도와 백령도 등 섬 지방 ▲갯벌과 섬 둘레길 '갯티' 등 천혜의 생태환경을 갖춰 자연환경형이 가능한 강화도와 덕적군도 ▲역사의 질곡과 아픔을 간직한 콘텐츠가 풍부해 역사문화형이 가능한 선감도와 매향리, 화성 당성, 강화도 ▲산업유산과 테마파크형이 가능한 시흥 바리지 길 등이 그렇다.

그러기에 경기만 에코뮤지엄은 기존 에코뮤지엄의 범주를 아우르는 기억의 보존과 상처의 치유를 위한 창조적 모험이 요구된다. 서로 다른 유형의 에코뮤지엄을 융합한다든지, 각각의 유형을 선으로 연결한다든지 등 창조적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성공조건=경기도는 경기만 일대 해양과 연안 마을에 흩어져 있는 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체계적인 목록화와 기록작업을 꼼꼼히 작성해야 겠다. '경기만의 기억'은 사라져 가는 역사문화의 원형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의 '삶의 기억'을 회복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에코뮤지엄은 지역을 배경으로 그 지역이 간직한 기억을 바탕으로 현재를 인식하고 미래를 창조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경기만의 역사문화 원형을 집단기억 속에 새기는 독창적이고, 구체적인 새로운 목표를 찾아내야 한다.

경기만 에코뮤지엄이 단기간에 일정한 궤도에 오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역주민이 지역공동체의 가치를 발견함으로써 정체성과 자긍심을 갖도록 하고, 조사발굴된 자원의 가치를 학습하며, 외부와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발전단계 등을 거쳐야 할 것이다.

여기에 경기만은 행정구역 상으로 경기도와 인천광역시, 충청남도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같은 행정단위를 포괄해야만 한다. 에코뮤지엄의 전형으로 손꼽히는 프랑스의 르 크뢰조-몽소 에코뮤지엄도 16개 코뮌이 연합해 에코뮤지엄을 설립하고 도시공동체를 형성한 광역 도시권이다. 이 도시 공동체는 행정구역이 아니라 에코뮤지엄의 설립과 함께 출현한 영역이다. '사람과 산업박물관'이 중핵 박물관 역할을 하고 나머지 위성 박물관이 각기 고유한 활동을 통해 대등한 관계로 연합해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경계해야 할 점도 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고민하고 동의하고 있는가. 마을경제를 살리는 이점과 동기부여가 있는가. 어느정도 지속가능한가. 유행처럼 따라하기를 할 것인가. 문화적 고유성과 커뮤니티는 있는가 등등. 사실 경기만은 이미 망했다. 경기만의 자연해안과 바다가 사라져 가고 있다. 갯벌매립과 방조제, 군사시설, 산업시설들이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 주민들은 바다와 단절된 삶을 강요받고 있다. 그래서 경기만 에코뮤지엄이든지 다른 무엇이든지, 경기만을 다시 살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