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명 작가·<13억 인과의 대화> 저자
▲ 최종명 작가·<13억 인과의 대화> 저자

5년 전인 2011년 7월, 당시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충칭(重慶)을 방문했다. 지금은 중대한 기율 위반으로 당적을 박탈당하고 감옥에 갇힌 보시라이(薄熙來)를 만나러 간 것이다.

경기도지사 시절 인연을 맺은 '친구'를 만나는 일은 자연스러웠으며 정치권의 화제였고 경제적 교류를 비롯해 '전쟁 위험을 막고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양국 공동의 관심사'라는 손 대표의 발언도 소개됐다.

나는 그때 '위험한' 인물을 만나는 것이 결코 손 대표에게 도움이 될 리 없으며 중국 정치판을 몰라도 참 모른다고 개탄했다.

2007년 보시라이는 중앙무대에서 거의 쫓겨나다시피 충칭으로 왔다. 범죄와의 전쟁, 사회주의 예찬을 위한 군중동원을 통해 와신상담하고 있는 모습이 야심으로 가득 찬 '아귀' 같았다.

남한 면적의 80%, 3000만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매년 외국인 직접투자 50% 증가, GDP 성장률 15%에 이르는 경제발전을 만들어낸 '충칭모델'의 기획자로서 승승장구하고 있는데도 불안한 정치인이었다.

불과 1년 전 당시 후진타오 주석의 측근인 왕양 광둥 성 서기(현 국무원 부총리)의 오른팔이던 원창을 부패 혐의로 사형시킨 정치권의 화약고이기도 했다.

충칭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대족석각(大足石刻)이 있다. '동방예술의 보배'라는 극찬을 받는 불교 석각으로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보물이다.

▲ 충칭 세계문화유산 <대족석각>의 '육도윤회도'.

특히 보정석각은 남송 시대 당시 유행하던 불교의 밀종사상을 구현하기 위해 스승의 지시에 따라 조지봉이 7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조상으로 환생시킨 보기 드문 명작이다.

500m에 이르는 암벽에 새긴 수많은 석각 중에서 단연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육도윤회도(六道輪回圖)다.

인과응보를 교훈으로 윤회사상을 세속의 민중에게 일깨우고자 소승불교의 뜻이 잘 담겨 있다. 지름 2.7m 크기의 원형 석각으로 고통의 바다에서 헤매는 인간이 경계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전륜왕이 들고 있는 원판은 6등분으로 나누어 윗부분은 선도인 천도, 수라도, 인도를, 아랫부분은 악도인 축생도, 아귀도, 지옥도를 배치했다.

극락세계와 지옥, 인간과 동물의 삶, 아수라와 아귀를 대칭으로 두고 정교하고 생생한 조각이 마치 살아있는 듯하다. 원판은 원 안의 원이 4개로 꾸며졌다.

한가운데 보살 옆에는 인간의 본성인 탐욕, 우둔, 분노를 상징하는 돼지, 비둘기, 뱀이 자리를 차지한다.

인간 세상에 자리를 차지한 네 명은 생로병사를 보여주고 동물 세상의 대표는 사자, 호랑이, 말이다. 가장 바깥 원에는 머리와 꼬리가 서로 다른 원통이 18개 있는데 머리는 내세, 꼬리는 전생을 드러내고 있다.

삶과 죽음, 선과 악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여섯 개로 나뉜 띠에는 둥근 불감 안에 자리잡은 30존 보살의 크기가 점점 커지는 것이 마치 전륜왕이 광채를 내뿜는 듯 착각도 일으킨다. 죄짓고 살지 말라는 경계로 읽힌다. 육도윤회도의 백미는 원판 밖에 서 있다.

왼쪽에는 문관과 무관이 서 있는데 각각 거만과 난폭을 뜻하는 것으로 '탐'을 상징한다.

오른쪽에는 여자와 원숭이가 서 있는데 바로 '애'를 상징한다. 사람 닮은 원숭이는 손으로 음부를 가린 적나라한 모습으로 이 석각의 백미가 아닐 수 없다.

'탐과 애, 두 욕망은 절제하기 어렵다'고 했던가? 보시라이는 자신이 다스리던 왕국에 '숨은 교훈'을 통해 얻은 게 없었나 보다. 중국 최악의 정치스캔들이자 권력투쟁이기도 한 보시라이 사건은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다.

보시라이는 국무원부총리를 역임한 혁명1세대 보이보의 아들이다. 그의 두 번째 부인이자 고의살인죄로 수감 중인 구카이라이는 6·25전쟁에도 참전했던 구징성의 딸이다. 둘 다 중국의 '금수저'다.

최근 사드로 중국과의 관계가 불편하다. 왕이 외교부장은 초한 쟁패의 칼춤 '항장무검'을 인용하며 한국을 비판하고 있다. 미국의 칼날(사드)이 북한(춤)을 겨눈 듯 하지만 의재패공, 사실 그 뜻은 중국을 향하고 있다는 인식이니 앞으로 중국과의 관계는 기나긴 인내가 필요해 보인다.

수교 24주년을 맞이한 두 나라는 보다 원숙한 교류관계로 들어설 시점이다. 사드 문제의 여파로 정치인들의 중국방문은 정지됐다. 그러나 다시 교류는 시작될 것이다.

손학규 전 대표도 정치 일선에 복귀한다는 소식이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육도윤회의 교훈을 모르는 중국 지도자와는 놀지 말기를 당부한다. 수레가 뒤집혔던 길을 다시 밟고 가는 '중도부철'은 하지 말아야 한다. /최종명 작가·<13억 인과의 대화>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