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5주년을 맞는 5· 3인천항쟁사건이 그동안 단순 노동운동으로 절하 평가되어 민주화운동 차원에서 정당한 역사의 재평가가 내려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5· 3항쟁은 군사독재정권통치에 맞서 이나라 민주화의 물꼬를 튼 민주화운동이었음에도 당시 군사정권의 여론 조작으로 극렬 폭력투쟁으로 변질돼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도 역사적 재조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주장은 당시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인사련)의장을 맡아 5· 3항쟁을 주도했던 현 민주당 이호웅의원(인천 남동을)을 중심으로 한 민주인사들에 의해 제기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의원 등 5· 3항쟁을 현장에서 이끌었던 주역들은 5· 3항쟁이 도화선이 돼 1년후인 87년 6월항쟁에서 직선제를 쟁취할 수 있었던 명백한 민주화운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숙한 사건이 마치 폭력으로 일관된 사건으로 알려진 채 역사속에 파묻혀 안타깝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5· 3항쟁을 재평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이유가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5· 3사태로 불리어진 5· 3인천항쟁은 86년 인천시민을 중심으로 봉기했던 민주화운동이다. 광주시민을 제물로 삼아 정권을 잡은 서슬퍼런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한 이날의 항쟁은 학생들의 시위와 대학교수를 포함한 지식인들의 잇따른 시국선언으로 민주화의 불을 지폈던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이날 학생, 노동자 인천시민등 5만여명은 인천시민회관 앞에 집결, 군부독재 타도, 직선제 개헌쟁취를 외치며 시위도중 1만여명의 경찰과 충돌했다. 그러나 당시 정권은 이날 시위를 좌익불순세력이 개입된 반국가행위로 규정하고 시위현장에서 애국시민 400여명을 연행, 133명을 구속하는 등 군사정권의 악랄한 탄압현장 그 자체였다.

 때문에 당시 군사정권의 왜곡된 여론조작으로 폭력사건으로 비쳐진 5· 3항쟁을 15년이 지난 이제라도 민주항쟁으로 재평가 되어야한다는 것이 인천시민 모두의 바람이다. 이런 엄청난 민주화운동이 이고장에서 일어났는데도 아직도 국민은 물론 일부 인천시민들조차 이날의 숭고한 정신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은 수치다. 5· 3항쟁은 인천시민의 자존심과 무관치않다. 어제가 5· 3사태 15주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