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스턴·이탈리아 밀라노·캐나다 밴쿠버 등 '세계 살기좋은 도시'
인적자본에 주목 … 韓 지자체도 '행복·공동체' 정책 주력

"도시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다."

에드워드 글레이저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책 '도시의 승리'에서 "우리의 번영과 자유는 사람들이 함께 살고, 일하고, 생각함으로써 얻게 된 선물"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은 도시에 산다. 미국 국토의 3%만을 차지하는 도시에는 2억4300만명이 몰려 있다. 전체 인구 3분의 2에 이르는 숫자다. 개발도상국에선 매달 5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시로 모여든다.

글레이저 교수는 "도시화가 더 많이 진행된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더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어느 나라나 상관없이 생활의 만족도는 도시 인구 비중이 높을수록 함께 높아진다는 것이다.

도시는 '기회의 땅'이었다.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도시는 팽창을 거듭했다. 그만큼 그늘도 드리워졌다. 주택난과 교통, 환경 문제가 떠올랐고 양극화는 주류에 끼지 못한 이들을 주변부로 내몰았다.

글레이저 교수는 "궁극적으로 도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비용조차 감당하기 힘든 건물이나 도로망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을 돌보는 지원"이라며 "진정한 도시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인간의 체취로 이뤄져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도시의 힘은 사람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떠나는 도시'에서 '찾는 도시'로

산업화로 번영을 누린 도시들은 제조업의 쇠퇴로 한때 몰락의 길을 걸었다. 미국 디트로이트가 대표적이다.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였다. 영광은 짧았다. 지난 50여년 동안에만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100만명 이상이 디트로이트를 떠났다. 지금도 시민 3명 가운데 1명은 빈곤층이다.

실패의 길로 접어든 도시에는 행복이 찾아들 겨를도 없다. 도시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인생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진다. 도시에서 희망을 찾는다는 얘기다. 디트로이트와 달리 성공한 도시들은 '사람'에 주목했다. 글레이저 교수는 "도시가 번성하려면 똑똑한 사람들을 끌어오고, 그들이 협력하면서 일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며 "인적 자본 없이 성공한 도시는 없다"고 했다.

미국의 보스턴과 미니애폴리스는 교육으로 다시 일어섰다. 이들 도시도 디트로이트처럼 제조업이 하향세이던 시절 '속이 텅 빈 껍데기' 같은 도시로 변했다. 하지만 공학과 서비스업 등 교육에 바탕을 둔 산업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밀라노 역시 마찬가지다. 1970년대 이후 인구가 급격히 줄었던 밀라노의 인적 자본은 '패션 허브'로의 변신을 이끌었다. 밀라노 인구는 2000년대 들어 다시 증가했고, 1인당 생산성은 이탈리아 전체보다 50%를 훌쩍 넘긴다.

캐나다의 밴쿠버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힌다. 밴쿠버도 1960~1980년대에는 '사람들이 떠나는 도시'였다. '밴쿠버리즘(Vancouverism)'이라고 불리는 도시 계획의 철학은 이런 흐름을 바꿨다. 개방형 공간과 도로, 다양한 대중교통이 '사람들이 찾는 도시'를 만든 것이다.

폭넓은 사회안전망과 이민 정책으로 인재들도 몰리기 시작했다. 밴쿠버 인구의 40% 정도는 해외에서 태어났다. 특히 아시아 출생자는 24%에 이른다. 합리적인 이민 정책과 탁월한 도시 계획이 인적 자본을 끌어온 지름길이었다.

10년 전 '행복지수' 개발한 서울

한국의 도시들도 이들 도시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산업의 중심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정보산업으로 바뀌면서다. 급증하던 인구도 주춤하거나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도시는 이제 삶의 질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예전처럼 개발과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면 세계 여러 도시처럼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행복한 도시를 지향하는 흐름은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1988년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행복'을 행정의 목표로 삼은 시·군·구는 3곳뿐이었다. 하지만 2012년에는 78개의 지방정부가 행복을 내세웠다.

특히 서울시가 선두주자로 꼽힌다. 서울은 지난 2006년 지역 특성을 반영해 시민 행복도를 측정하는 '행복지수'를 개발했다. 행복지수는 경제, 문화, 복지, 생활 환경, 공동체적 삶 등 8개 분야, 21개 문항으로 조사된다.

이 무렵 서울복지재단의 '세계 도시 행복도 조사'를 보면 서울은 63.6점으로 조사 대상 도시 가운데 가장 낮았다. 스톡홀름(80.0점)·토론토(79.9점)·뉴욕(78.3점) 등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개발 위주였던 서울의 정책은 치유와 회복, 삶의 질, 공동체, 환경을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2030 서울의 미래상'(2030 도시기본계획)의 슬로건은 '소통과 배려의 행복한 시민도시'다.

행복도시 지름길은 '공동체 복원'

행복한 도시로 나아가는 길에서 중요한 건 '소득'보다 '공동체'다. 유엔(UN)은 지난 2012년에 펴낸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 가운데 소득은 8% 정도의 비중만을 차지한다"며 "이타주의적 삶의 태도를 갖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높은 소득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덜 행복하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유엔은 공동체가 발달한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등 유럽 강소국이 상위권에 자리한 점을 주목했다. 저개발 국가에선 소득이 중요하지만 기초생활 수준이 어느 정도 충족되면 소득에 대한 의존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최근 '행복도시'를 목표로 내건 부산시도 '공동체 복원'에 주목하고 있다. 부산발전연구원은 '행복도시 부산, 현실과 과제'(2013) 보고서에서 "개인이 느끼는 행복감은 단순히 개인이나 가족 차원만이 아니라 지역에서의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며 "도시의 공동체를 복원하는 정책은 시민 행복감이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유정복 인천시장 "시민행복 체감지수 높이는데 중점둘 것"


"인천은 이제 '행복'을 얘기해야 합니다. 앞으로 2년 동안 '시민 행복 체감 지수'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두겠습니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지난 6월27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민선 6기 2주년 기자설명회'에서 행복을 강조했다. '인천형 경제·복지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내놓은 것이다.

인구 300만명 돌파를 앞둔 시점에서 시는 '시민 행복 체감도'를 설계하고 있다. 단순한 통계가 아닌 시민 생활을 보여주는 지표를 연구한다는 것이다. 인천발전연구원이 맡은 '시민 행복 체감 지수 개발계획'에는 주거·보육·건강뿐 아니라 문화, 교통, 환경 등의 분야가 담긴다.

일자리도 주요 지표 가운데 하나다. 앞서 '300만 인천시대, 시민이 행복한 인천 비전'이라는 주제로 지난 4월29일 열린 '애인(愛仁)토론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행복 체감 정책으로 '기업하기 좋고, 일자리가 많은 인천'을 꼽았다.

인천의 미래를 열어갈 행복 체감 지수는 오는 9월쯤 윤곽이 나올 전망이다.

유 시장은 "고도 성장을 넘어 양극화 등 사회적 문제를 풀려면 시민 행복과 직결된 공동체 복원이 필요하다"며 "지역 실정에 맞는 따뜻한 공동체 사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