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 사회부장
▲ 이은경 사회부장


'또 오해영'이라는 드라마가 연일 화제를 일으키며 막을 내렸다. 주말에 우연히 재방송으로 접하게 된 기자도 드라마 재미에 흠뻑 빠져버렸다.

에릭이라는 배우가 이렇게 멋있는지 몰랐고, 일명 '흙수저'라 불리는 오해영의 발랄하고 솔직한 연기에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이 드라마를 계속 보게 된 것은 극중 대사 때문이었다.

자신이 3급수라고 여긴 오해영이 1급수인 '금수저' 오해영과 자신의 삶을 빗대는 부분이었다.

주인공의 독백인데 이렇다.

"1급수에 사는 물고기와 3급수에 사는 물고기는 서로 만날 일이 없다. 1급수였던 예쁜 오해영은 1급수의 남자들을 만났고, 3급수였던 나는 3급수의 남자를 만났다."

1급수는 1급수끼리, 3급수는 3급수끼리 각기 수준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기자는 이때까지만 해도 주인공이 정말 3급수인 줄 알았다. 3급수로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대변해주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드라마를 떠난 현실에서 주인공은 3급수도, '흙수저'도 아니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자리만큼 뜨거운 화두는 없다. 정부는 물론 인천시, 기초지자체까지 일자리 창출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이런 상황이지만 주인공에게는 일자리가 있다. 그것도 대도시에 본사를 둔 외식사업본부 상품기획팀 직원.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인천,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 실업률이 높았다. 이 중 인천의 실업률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0.8%p 하락하고도 전국에서 가장 높은 4.8%를 기록했다.

청년실업률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전국적으로 청년실업률은 올 2월 9.2%에서 5월에는 9.7%로 급증했다. 이는 역대 최고치로 집계됐다.

통계청 실업률을 넘어 체감 실업률은 심각한 수준이다. 한 경제연구기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체감 청년 실업률은 34.2%에 달한다.

특히 남성보다 여성 일자리가 더 적은 현실에서 여성인 오해영은 직장인이다.

최근 인천여성노동자회가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실시한 지역 내 모집·채용 광고 모니터링 결과는 한 마디로 어리고 예쁜 여자만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직무수행 능력과 상관 없이 남성 또는 여성만을 특정해 모집하는가 하면 같은 일을 하면서도 여성은 남성에 비해 임금이 더 적었다.

또 여자들의 경우 남성보다 더 어리기를 바라고, 용모단정이라는 단서를 붙여 채용기준을 두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결국 드라마 속 주인공 '오해영'도 일반적인 채용기준에 부합한 미모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실연의 아픔을 견디기 위해 며칠동안 회사에 나가지 않아도 잘리지 않는 그야말로 꿈의 직장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청년들은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곧 일자리에서 출발한다. 할 일 없는 불안한 미래를 꿈 꿀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연애, 결혼, 출산, 집 마련, 인간관계 등은 일자리가 없는 청년들에게는 사치나 다름없는 허황된 꿈일 수밖에 없다.

'3포 세대', '5포 세대'를 넘어 삶의 모든 가치를 포기한 20~30대를 일컫는 'N포 세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사는 삭막한 청년들의 고뇌가 느껴진다.

누구나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때,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기준으로 채용될 수 있을 때, 오해영은 진정 3급수가 될 수 있다.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있는 현재 젊은 청년들에게 오해영은 1급수다.

직장이 있고, 연애할 수 있고, 결혼까지 골인한 오해영은 3급수가 될 수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주인공 오해영은 3급수가 아닌 1급수였다.

직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1급수가 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은경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