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마르코폴로 ~ 조선 심노숭 39인의 '핵심전략'
동심~자득 아홉가지 정리
개성·자유·자연스러운 글쓰기 강조
▲ <글쓰기 동서대전>
한정주 지음
김영사
688쪽, 1만9000원

글은 보통 기술이나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잘 쓸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실은 '철학'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새책 <글쓰기 동서대전>(김영사·688쪽)은 이덕무에서 쇼펜하우어에 이르기까지 최고 문장가들의 핵심 전략과 글쓰기에 관한 인문학책이다. 이 책은 동서양 글쓰기 천재들로부터 배우는 글쓰기 핵심 전략책이라 할 수 있다.

18세기 조선을 강타한 동심의 글쓰기는 무엇이었을까. 신세계를 향해 떠난 미친 선비 서하객의 60만자 일기에는 어떤 욕망과 포부가 담겨 있었는가, 조닌 계급의 애욕과 삶을 대변한 이하라 사이카쿠의 소설은 어떤 시대적 상황 속에서 태어났는가, 풍자의 글쓰기가 유행했던 18세기 영국과 19세기 일본의 제국주의 사회는 어떻게 서로 닮아 있을까.

이 책엔 서양의 마르코폴로에서 중국의 이탁오와 공안파, 그리고 조선 호모 스크립투스 심노숭에 이르기까지 39인 동서양 글쓰기 천재들이 등장한다.

<글쓰기 동서대전>의 작가 한정주는 일국사와 민족사의 한계를 넘어선 지역사(아시아사) 연구와 더불어 동서양 문명과 지식의 차이점을 교차, 비교하는 작업을 해온 고전 연구가이자 역사 평론가다.

글쓰기엔 글 이전에 반드시 철학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이 책은 18세기를 중심으로 14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동서양 최고 문장가 39인의 핵심 비결을 동심에서 자득까지 아홉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책에선 그동안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용휴, 이옥, 조희룡 등 조선 작가와 중국 작가 오경재, 장대, 서하객 그리고 일본 작가 요시다 겐코, 이하라 사이카쿠 등을 소개한다. 박지원, 노신, 바쇼, 볼테르 등 잘 알려진 대가들도 당연히 등장한다.

풍자의 글쓰기가 유행했던 18세기 영국과 19세기 일본 제국주의 사회의 유사성을 비교하고 조선의 영정조 대와 중국의 강희제·건륭제 시대를 함께 위선의 시대로 규정짓는다.

또 일본 문화를 동아시아의 갈라파고스로 묘사하는 등 동아시아 문화에 대해 심층적으로 탐구하면서 동서양 최고 문장가들의 글과 삶에 녹아 있는 인문학을 풀어낸다.

이 책에서 줄기를 이루는 18세기는 지식과 개성이 만개 폭발한 시대였다. 그 배경에는 부르주아, 조닌, 중인 계층 등이 사회 중심 세력으로 성장하는 경제구조적 변화가 있었다. 백과사전식 저술을 통해 지식이 대량 생산되었던 당시 상황은 오늘날 인터넷을 통해 지식이 폭발하는 상황과 매우 닮아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시대의 글쓰기는 어떠한가. 이것이 저자가 책을 통해 던지고자 하는 질문이다.

동심의 글쓰기를 책의 첫머리에 놓은 까닭은 글쓰기에는 무엇보다도 개성과 자유, 그리고 자연스러움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갖춘 글이라면 비록 구성, 논리, 문법, 형식, 수사, 형식이 불완전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진짜 글이다.

구성, 논리, 문법, 형식, 수사, 형식은 누구라도 고쳐줄 수 있지만 독창적인 것은 반드시 자기 자신에게서만 나오기에 다른 이들이 고쳐줄 수 없기 때문이다.

글이 갖추어야 할 조건들에 얽매인 나머지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소품의 글쓰기를 권유하는 제안도 귀 기울여볼 만하다. 글이란 간결한 묘사와 절제된 표현으로도 자신의 감성과 마음을 훌륭하게 담아낼 수 있다.

20세기 초 노신과 임어당이 중국 현대문학의 발전을 위해 시급하게 복원해야 할 옛 문장의 전통 중 다른 어떤 것보다 소품문을 들고 나온 것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도 유의미하다. 1만9000원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