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 개관
▲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재현된 수술실 모습을 둘러보고 있다.


개원 당시 진료실 등 재현 … 왕진가방 등 소품도 전시
학생들에게 의료 교육 기회 제공·부모에겐 추억 선물


가천길재단(회장·이길여)의 모체가 된 '이길여 산부인과'가 1950~60년대 당시 모습 그대로 복원됐다.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 개관식이 13일 오후 3시 동인천 길병원 옆 '용동 큰 우물' 공원에서 열렸다. 개관식엔 인천지역 기관장, 지역주민, 재단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은 개원 당시 진료실, 초음파장비 등 시설 등이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서민들의 절절한 사연, 봉사와 박애 정신으로 환자를 품었던 의사 이길여의 따뜻한 정신까지….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은 9층 건물 중 1~3층을 50~60년 모습으로 되살려냈다.

1층에는 접수대, 대기실, 진료실이 2층에는 분만 대기실, 수술실, 병실이 꾸며졌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보증금 없는 병원' 간판과 인천 최초의 초음파기기, '바퀴를 붙인 의자', 당시의 의료 장비 등에 담긴 의사 이길여의 환자 사랑과 그 시대 서민들의 애틋한 사연을 생생하게 담는데 주력했다.

3층은 오늘날의 모습으로 발전한 가천길재단의 모습을 비롯해 왕진가방 등 소품도 전시했다. 포토 존과 함께 '마르지 않는 아름다운 샘'을 의미하는 이길여 회장의 호 '가천(嘉泉)'의 정신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눈에 띈다.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은 환자를 어루만져 생명을 살리고자 했던 이길여 회장의 공익경영이 초석을 다진 곳이다. 이 회장은 1958년 인천 중구 용동에 '이길여 산부인과'를 개원했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후인 1969년 병원을 9층, 36병상으로 증축했다.

일본 유학 후인 1978년 전 재산을 털어 여의사로서는 국내 최초로 의료법인을 설립했다. 의료법인 인천길병원은 이길여 산부인과와 맞닿은 부지에 150병상 규모 종합병원으로 지어졌다.

이길여 산부인과와 인천길병원은 현재까지도 가천대학교 부속 동인천길병원으로 여전히 운영되며 58년 동안 인천 중구 지역 주민들의 건강 지킴이로서 우뚝 서 있다.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은 인천길병원 개원 이후 의료, 교육, 연구시스템을 통합 할 '최첨단 대형 종합병원' 설립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1987년 남동구 구월동에 세워진 중앙길병원(현 가천대 길병원)은 그렇게 탄생했다.

가천대 길병원은 현재 1400병상의 국내 굴지의 대형병원으로 성장했으며 국내 탑3(top3)의 연구중심병원으로서 기능을 수행 중이다. 2012년 출범한 가천대학교는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는 명문대학으로 발전 중이기도 하다.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을 개관한 가천대 길병원 이태훈 의료원장은 "젊은 세대들이 옛 시절,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환자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사 이길여를 만나면서 인류를 위한 박애와 도전 정신을 깨닫는 마당이 되기를 기대한다. 또 부모 세대의 생활상을 여러 세대가 공유하며 즐거운 추억을 함께하는 기회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은 개항장인 인천 중구 지역이 가진 문화적 특징과 어우러져 새로운 지역 문화 소개 창구가 될 것"이라며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역사, 의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부모 세대에게는 추억을 선물하는 소통의 공간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야기가 있는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 관람 포인트]

보증금 없는 병원

기념관 입구에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보증금 없는 병원' 간판이 걸렸다. 1977년 우리나라에 의료보험제도가 생기기 전까지 병원들은 환자들에게 입원 보증금을 받았다. 진료비를 내지 못하는 어려운 환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길여 회장은 전국에 있는 병원들 중 유일하게 환자들에게 보증금을 받지 않았다. 접수대 앞에서 쩔쩔매는 환자나 행색이 초라한 환자가 보이면 따로 표시를 해 두었다가 진료비를 받지 않았다.

기념관 1층 대기실에는 쌀가마니, 배추, 고구마 옥수수 생선 등을 가지고 온 환자들의 정감 있는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진료비를 내지 못한 환자들이 보답으로 놓고 간 농산물이 병원 마당에 쌓이곤 했다.


바퀴 붙인 의자

1층 가장 안쪽은 진료실로 복원됐다. 보증금을 받지 않는다는 소식에 환자들은 전국에서 몰려들었고 병원 밖에 길게 줄을 서기도 했다.

겨울이면 추위에 덜덜 떨며 기다리던 환자들을 보며 '어떻게 하면 환자들이 나를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이 회장은 3개의 진찰대를 나란히 설치하고 의자에 바퀴를 달아 진찰대 사이를 오가며 번갈아 치료했다.

지금은 아주 흔한 바퀴달린 의자를 당시에는 구할 수 없어 작은 바퀴를 사다가 의자에 직접 붙였다. 바퀴붙인 의자는 길병원 정신의 한 상징물이다.

인천 최초의 초음파 기기와 엘리베이터

진료실 한쪽에 놓인 태아심장 박동을 들려주는 초음파기기는 '인천지역 명물'이었다. 미국 유학 후 이길여 회장은 선진의료시스템을 고국의 환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1970년대 초 우리나라에 '태아심박' 초음파기기 4대가 도입됐을 때 그 중 한 대를 들여왔다.

당시 4000만원(현재 7억원 상당)의 고가 장비였지만 초음파는 태아의 건강상태를 가족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기기였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았다. 초음파 기기로 아기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면 산모와 가족은 물론, 기다리던 환자들 모두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이길여 산부인과에는 인천 병원 가운데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는데, 엘리베이터를 보기 위해 일부러 병원에 오는 구경꾼도 있었다.

'가슴에 품은 청진기' 배려와 사랑

1층 진찰실로 복원된 곳에는 이길여 회장이 항상 가슴에 품고 다니던 '청진기'가 전시되어 있다. 청진기의 차가운 촉감 때문에 진료 받는 환자가 놀라지 않도록 늘 청진기를 가슴에 품고 다니며, 체온으로 덥혔다. 이 청진기는 이길여 회장의 환자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대변하는 마음의 미디어이다. 환자의 마음까지 어루만지고자 했던 이길여 인술의 상징이다.

출산의 감동과 미역국

좁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당시의 수술실과 분만 대기실, 입원실이 복원돼 있다. 의료수준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지금은 병원에서 출산을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50~60년대만 해도 집에서 지푸라기를 깔아놓고 아이를 낳는 산모도 많았고, 병원 시설도 열악했다.

평생 처음 병원에 온 환자가 수두룩했다. 환자들이 병원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수술 도구 하나, 수술대 하나까지도 직접 환자입장에서 누워보며 챙겼다. 기념관 2층에는 산모의 감격에 찬 얼굴, 입원해 회복 중인 산모와 그들을 보살피는 의사 이길여의 모습이 재현돼 있다.

체온을 느끼려 환자를 꼭 안아서 일으키는 의사 이길여의 정성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이길여 산부인과는 미역국이 맛있기로도 소문이 나있었다. 병원에서 먹었던 미역국 맛을 잊지 못해 퇴원 뒤에도 냄비를 들고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도 있었다.


/글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
/사진 이상훈 인턴기자 photohecho@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