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에 중화동이라는 동리가 있다. 서남쪽으로 향한 바닷가 마을이다. 작은 포구인데 백사장에는 까나리젓 통들이 정열해 있으나 오히려 어지럽다. 갯마을인 만큼 방파제가 시작하는 위치에 아름다운 절경의 뾰죽바위가 서있다. 바닷물이 밀면 중간까지 물에 잠기고 썰물에 전모를 드러내느라 마을의 수문장격이 된다. 이를 일러 선대바위라고 한다.

 여느 마을마다 전해오는 전설이 있듯 중화동 역시 그러하다. 대표적 사연은 `용머리 큰우물"이다. 현 중화동교회 언덕밑 큰 탱자나무 곁에 샘이 잘나는 우물이 있는데 여름이면 차디찬 냉수요 겨울엔 김이 무럭무럭 나며 언제나 넘쳐나는 수원이 풍부하다. 교회가 좌정한 위치는 지형적으로 용의 머리에 해당하고 용이 우물물을 마시는 형국이라 해서 그렇게 이름지어 졌다고 한다.

 그 위치의 중화동교회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유서깊은 곳이다. 그래서 관광객중 기독교 신자들이 종종 찾는다. 1897년 충청도 공주사람 김성진이 충언을 상소하다 백령도에 유배되어 왔는데 이곳 유지인 허득에게 성경 한권을 주어 기독교를 전한데서 교회가 비롯되었다고 한다. 허씨는 우선 가족들과 함께 예수를 믿는 한편 장연군 송천리교회에 사람을 보내 전도사를 초빙함으로써 점차 기독교인이 늘어났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천주교회가 서양의 선교사를 초청했던 사실과 비슷하다.

 송천리교회란 1880년대 서양 선교사가 아닌 우리 한국인에 의해 세워진 최초의 교회로 소래교회라고도 한다. 아무튼 1899년 초가 6간의 중화동 예배당이 현위치에 세워지고 언더우드 선교사가 입도하여 세례를 베품으로써 허씨 등 7인이 초대교인이 되었다. 이를 반석으로 해서 차츰 교세가 백령도 전체로 전파되어 나갔는데 유독 이곳에 반일애국지사가 많았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중화동교회 기념관이 오는 7월 완공되리라 한다. 지금으로부터 한세기전 궁벽했던 이곳에서 교회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땅에 떨어진 한알의 밀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