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우리나라도 옛부터 산림보호국이었다. 도벌자는 사형에 처하고 봄철에 나무를 심지 않는 자도 벌을 과했다. 부락민들이 입산하여 땔나무를 할 때도 회의를 열어 결정을 보아야 했다. 즉 경국대전 공전재식편(工典裁植偏)에 “봉산의 큰 소나무 열그루 이상 도벌자는 사형에 처하고 산에 불을 낸 자는 고의가 아니라도 엄벌한다”고 했다. 정조의 송금절목(松禁節目)에도 “바닷가에서 30리안의 지역은 아무리 사유지라도 벌목 못한다”고 했다.



 그같은 조정의 봉금정책과 철저한 남벌 단속으로 우리나라의 산들은 무성했다. 전국토의 73%에 달하는 1천6백20만 정보가 울창했다고 한다. 압록강 두만강 유역은 원시림이었고 남쪽의 영호남도 산지는 물론 부락 인근의 평지에도 방풍림 풍치림이 가꾸어졌었다. 이를 보고 러시아인들은 `한국지"에서 산림이 울창한 우리나라를 일러 `아시아의 보고"라고 했다.

 그것을 황폐화한 장본인은 일본이다. 우리나라를 병탄하기 이전부터도 그들은 압록 두만강 유역에서 부터 대대적인 벌목에 착수했다. 총독정치가 착수된 직후 천문학적 숫자인 당시의 돈으로 10억여원의 벌목 매상을 올렸다고 하니 짐작이 갈만하다. 이를 일러 강동진 교수는 일본인들의 강화도조약 이후 70여년간 저지른 각가지 죄과중 하나가 우리 산야의 남벌이었다고 단정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 책임을 우리에게 완전히 뒤집어 씌웠다. 무지한 조선인들이 남벌하여 벌거벗은 대머리산을 만들었다고 거짓 선전을 했으며 씨가 먹혔다. 우리의 주거 구조가 온돌인데다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 난방을 해왔던 터라 조작을 그대로 받아들여 자책지감으로 막연 하나마 그렇겠다고 여겼다.



 어쨌든 광복이후 지금껏 다시 산림에 정성을 쏟아온 결과 우리 산야는 어느 정도 여유로워졌다. 유럽의 산야에 비교될 수는 없어도 공중에서 조감하는 우리 국토는 검푸르다. 그런데 근래 난개발과 빈발하는 산화로 다시 황폐화하고 있다. 조선조의 봉금책이 다시 등장해야 할판이다. 오늘은 마침 식목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