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옥 정치부장
▲ 윤관옥 정치부장

민중가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원작자인 시인 고 박영근(1958~2006년)은 자신의 첫 시집 <취업공고판 앞에서·1984년>를 통해 시 '솔아 솔아 푸른 솔아-百濟(백제). 6'을 발표한다.

박영근은 1980년대 민족민중문학 주체론이 한창이던 시기 이른바 '노동문학'이라는 새 지평을 연 '현장문인'으로 문단에서 평가 받는다. 노동자의 삶을 시로 표현해낸 그의 문학적 사조와 고민은 박노해, 백무산, 김해화, 김기홍 등 노동자 출신 시인들로 이어진다.

급속한 산업화 속에 인간성 포기마저 강요 당해야 했던 암울한 시기, 그의 시는 그 자신이 노동자로서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고발하는 실천적 문학의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직접적이고 전투적인 구호보다는 서정성에 기대 시대적 고민을 담은 표현 형식과 언어로 인해 인간 존재에 관한 진지한 성찰을 아우른다는 평가가 여전히 유효한 시인이기도 하다.

전북 부안군 변산면 마포리에서 태어나 군 제대 후 서울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며 1981년 시 '수유리에서'로 문단에 데뷔한 박영근이 인천과 연을 맺은 것은 1980년대 중반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서울 구로공단과 함께 국내 노동운동의 구심이었던 인천 부평공단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것이다. 이후 그는 첫 시집 <취업공고판 앞에서>를 필두로 <대열·1987년>, <김미순전(傳)·1993년>,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1997년>, <저 꽃이 불편하다·2002년> 등 한국문단에 신선한 파장을 던진 시집을 연달아 내놓는다.

시평론집 <오늘, 나는 시의 숲길을 걷는다·2004년>를 세상에 내놓는 등 왕성한 평론활동도 벌였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인천지회 부회장, 민예총 인천지회 부지회장 등을 역임하며 문화예술계 변혁의 맨 앞에 서길 마다 않는 실천적 모습을 체현했다. 하지만 2006년 5월3일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같은 달 11일 결핵성 뇌수막염과 패혈증으로 결국 세상을 등진다. 한창 일할 나이인 48살이 그에게 주어진 이승에서의 나이테였다.

얼마 전 박영근의 동무였던 노동소설가 이인휘가 오랜 침묵을 깨고 신작 노동소설 <폐허를 보다>를 내놓았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중편 '시인, 강이산'의 주인공 강이산은 실제 시인 박영근을 모델 삼았다.

극도의 가난과 질병 속에서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쳤던 고인이 생전 즐겨 찾던 부평구청 옆 신트리공원에는 지난해 시비가 세워졌고, 기념사업회는 조용한 가운데 꾸준히 추모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다. 지난 7일 부평구청 대회의실에선 박영근 10주기를 맞아 추모·전집 발간 기념 심포지엄이 열렸다. 오는 21일 오후 2시 부평아트센터에선 박영근과 대중이 함께 호흡하는 장이 펼쳐진다. 부평구와 경인방송 iFM이 '저항을 넘어 평화로!'란 주제로 '2016 부평 솔아솔아 음악제'를 여는 것이다.

부평은 1980~1990년대 노동운동의 메카였다. 전국 대학에서 동시다발 상영을 추진하며 노태우 정권과 대치했던 독립영화 '파업전야'의 배경이 부평이었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한국에 현대 미국문화의 유행을 퍼뜨린 본산으로도 통한다.

1950~1960년대 부평미군부대 주변에 있던 30여 군데의 음악클럽은 한국 대중음악의 산실이 됐다. 혹독한 철권통치 체제 아래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은 이렇게 음악과 영화, 시를 통해 서로 맞서는 듯, 서로 섞이는 듯 혼종과 융합의 역사를 만들어 온 측면이 있다.

부평의 현대문화는 인천의 현대정치와도 궤를 같이한다. 홍미영 부평구청장이 20대 때인 1986년 빈민층 여성·아동을 위한 비영리 동네공부방 '해님방'을 열고 주민생활운동에 나섰던 곳이 바로 부평이다.

민선 인천시장에 이어 4선 국회의원이 된 송영길 당선인은 부평역 뒤편에 자취방을 얻어 대우자동차 용접공으로 위장취업해 노동자 생활을 시작했고, 3선 홍영표 당선인 역시 대우자동차 용접공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재선의 윤관석 당선인 또한 부평공단에서 노동자 생활을 했다. 노동·인권변호사로서 법률사무소를 공동개업했던 문병호·최원식 국회의원도 부평이 활동근거지였다.

기자는 별다른 정파적 신념을 갖고 있지는 않다. 좌우 진영논리를 강변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최근 일고 있는 박영근 추모사업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 다만 지금 부평에서 활발히 일고 있는 문화 재조명·재창조 움직임에 주목하고 싶을 뿐이다.

이 모든 모습은 곧 인천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다가온 부평 솔아솔아 음악제는 시민과 문화예술인, 정치인, 행정가 모두 오손도손 둘러앉아 인천의 가치를 되새기고 논하는 마당으로 승화되길 기대한다. /윤관옥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