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시 죽산의 칠장사 대웅전 곁에 조각 솜씨가 뛰어난 석불입상이 모셔져 있다. 원래 봉업사터에 있었는데 옮겨온 것이다. 칠장사는 죽산에서 충북 진천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서 높지는 않으나 산골 숲속에 자리한 고색창연한 고찰이다. 원래 모셔져 있지 않던 부처님이 이곳에 어떻게 해서 왔는지 분명치는 않으나 지금 죽산중고등학교 교정에 있으면서 학생들의 손을 타던 것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봉업사 부처님은 속인이 보기에도 매우 섬세하다. 비록 얼굴은 약간 마모되어 있을 망정 천년을 머금은 미소를 그치지 않는다. 오른 손을 들어 살포시 가슴에 얹고 왼손은 무릎 아래로 늘어진 옷자락을 잡는 듯한데 서있는 전신의 자태가 일품이다. 어깨에 걸친 얇은 법의는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살아 계신 모습이다.

 봉업사가 언제 창건되고 폐사되었는 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으로 어렴풋이 더듬을 수 있을 뿐이다. 즉 `죽산현고적조"에 “봉업사는 비봉산 아래에 있다. 고려 태조의 진영을 봉안했는데 공민왕 12년2월 왕의 어가가 이곳을 지날때 진전을 참배했다. 지금은 탑만 남아있다”.

 이로 미루어 봉업사는 고려의 국조인 태조 왕건의 진영을 모시고 명복을 비는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봉업사는 당대의 명찰 이었을 께다. 지금도 인근에 불상대좌와 탑이 흩어져 있어 매우 넓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봉산은 죽산을 감싸안은 낮으막한 산으로 몽고난때 송문주 장군이 승리를 이끌어낸 죽주산성이 자리한 곳이다. 평택과 안성에서 장호원으로 향하는 38번 국도로 죽산을 벗어나면 봉업사터를 알리는 오랜 세월 만큼이나 검푸른 이끼로 덮인 당간지주와 삼층석탑이 차창으로도 보인다.



 이번에 봉업사 발굴조사단에 의해 명문기와 등 유물 300여점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전에도 유품이 대량으로 출토되었었다. 안성의 죽산땅은 임꺽정 장길산 등 명작을 낳을 만큼 옛 민초들의 혼이 서린 곳이다. 그같은 유서깊은 유적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시민들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