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부리가 별로 없었던 시절 칡뿌리는 어린이의 좋은 먹거리였다. 학교앞 구멍가게에서 팔았는데 그것을 사다가 잘근잘근 씹으면 입안 가득 단맛이 돌고 찌꺼기는 뱉아 버렸다. 언제부터인지 지금도 장마당에 나가면 어른 팔뚝 보다 굵은 것을 손수레에 싣고 나와 즙을 내어 파는데 그 시절에는 어찌 굵은 것이 없고 가늘었는지 모르겠다.

 정다산의 `목민심서"에도 지적되어 있거니와 칡은 주전부리만이 아닌 구황식이었다. 칡뿌리를 캐다 절구통에 찧어 물속에서 주물러 앙금으로 국수도 떡도 해먹었다. 주성분이 녹말이어서 가루를 냈는데 이것이 요긴한 식량이 되었다. 옛날 중국에서는 전쟁터에서 식량이 떨어지면 뿌리를 끓여 마시게 했다고 한다.

 식량이 귀했던 강원도 산골의 화전민들의 주식도 칡이었다. 남자들은 톱 도끼를 들고 칡뿌리를 채취하는 것이 중요한 한해 농사요 부녀자들은 녹말 내는 일을 맡아했다. 캐온 칡뿌리를 바위에 놓고 짓찧어 자배기에 넣어 우리는데 이 때는 온동리의 축제 같았다. 그리고 며칠후면 앙금이 가라 앉는데 밑에 검은색으로 부터 누런색 흰색 등 몇겹의 층이 생기며 질이 좋은 흰색 녹말로는 국수를 검은 색으로는 떡이나 묵을 해 먹었다.

 칡은 우리나라 산의 어느곳에서나 잘 자라는 콩과의 덩굴나무이다. 생명력이 아주 강해서 줄기가 땅에 닿으면 곧 그 마디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방용으로 심기도 하지만 숲에 칡이 많이 자라면 다른 나무들을 뒤덮어 피해를 준다. 멀쩡하던 수목들이라도 한번 칡넝쿨이 닿으면 목을 죄듯 감겨 결국 말라 죽는다. 하긴 최근에는 도시 가정에서 등나무 대신 관상용으로 심는다고도 한다.

 서해 도서지역 해병대 장병들이 칡넝쿨과의 전쟁을 선포 제거에 나섰다고 한다. 특히 백령도는 희귀 식물이 서식하는 곳인데 칡으로 인해 고사하고 있기 때문이며 넝쿨이 무성하기 전인 봄철 야외훈련때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뻗어가는 칡도 한이 있다"는 속담이 있듯 해병이 있는 곳에 칡의 한계도 있으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