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교육 열정' 연변 조선족학교 13명 교사 이야기
▲ <두만강중학교>
박영희
작은숲
264쪽, 1만5000원

1992년 한·중 수교는 조선족 사회에 커다란 화두를 던져줬다. '한국 취업 바람'이 몰아친 것이다. 고국으로 가는 조선족들은 떠나면 유능한 자였고 그렇지 못하면 무능한 자라고 낙인찍혔다.

광복 이후 2400여 개에 이르던 조선족 학교는 이제 180여 개만 남아 명맥만 잇고 있을 뿐이다. 바보 취급과 박봉을 감수하는 열악한 상황임에도 그들이 학교에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민족 교육, 민족 문화, 남북 통일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박영희 작가가 2014년 겨울 연변으로 날아가 10개 학교 13명의 교사들을 만났다.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 등의 전작을 펴낸 박영희 작가는 점점 사라져 가는 민족 교육의 이름을 지키며 살아가는 연변 교사들의 이야기를 신간 <두만강중학교>(작은숲·264쪽)에서 얘기한다.

일제 강점기, 나라를 빼앗겨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만주에 학교를 세워 독립의 기틀을 만들고자 했다. 윤동주, 문익환, 장준하가 졸업한 '명동학교'를 비롯한 학교들은 항일 운동의 근거지였다. 그 학교들 교정엔 지금 중국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한족 학교와의 통폐합은 더 큰 문제로 다가온다. 우리 말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가르치는 연변의 조선족 학교에선 조선어와 조선 역사를 별도로 가르치며 민족 전통문화를 잇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들에게서 '민족'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 그 자체였다.

박영희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언젠가 조선족 학교가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래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민족 교육의 이름을 지키고 살아가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 교육의 길을 묻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박 작가는 "그들은 아주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그들의 교육관에 대해 말했으며 한국을 다녀 간 경험이 있는 몇몇 교사들은 한국의 사교육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며 "박봉이지만 교육의 열정만큼은 대단했고 민족 교육을 지켜내기 위한 그들의 노력 또한 눈물겨웠다"고 덧붙인다. 그는 신념과 열정으로 조선족 학교를 지키는 교사들의 모습에서 우리 교육의 길을 성찰하고자 의도한다.

조선족이 약 79만명 정도 거주한다는 연변조선족자치주. 그곳에 있는 조선족 학교. 그리고 교사(교원).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중국 내 조선족 학교가 그 명맥이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우리나라 '교사'들에게 민족교육을 지키는 그들의 가슴 속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교육 철학과 신념을 들려주고 싶어서였다고.

박영희 작가가 2014년 겨울에 그들을 만나기 위해 연변으로 떠났고 2015년 초에 원고를 완성한다. 박 작가의 취재를 통해 만난 연변의 교사들의 교육 철학과 신념은 대단했다. 하지만 조선족 사회에서 교사라는 직업의 위상은 우리나라와는 사뭇 달랐다.

돈을 벌기 위해 학교를 떠나는 교사와 학부모들이 많았고, 그에 따라 조선족 학교 숫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연변의 조선족 학교는 위기 상황이었다. 하지만 교사들의 열정은 그것과 무관했다. 그들 역시 불안해하고 고민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여전히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명감과 열정으로 위기의 상황을 견뎌내고 있었다.

중국의 '조선족' 하면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긍정 이미지보다 부정 이미지를 먼저 떠올릴 지 모른다. 그렇지만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거나 건설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조선족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시대이다.

조선족은 동북 3성을 비롯해 연해주 지역에 걸쳐 150만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중 2000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약 40만명이 거주하는 중이다. 영화 <동주>의 주인공인 윤동주도 조선족이고 윤동주와 명동학교 동문인 문익환이나 장준하 역시 조선족이다.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빼앗겨 삶의 터전을 잃은 후 새로운 삶을 위해 또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이주해 간 곳이 바로 만주였다.

만주 항일 운동에서 그 첫 번째 목표가 만주 땅에 학교를 세우는 것이었고 광복 뒤 많은 사람들이 귀국을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남았다. 그렇게 남은 사람들은 중국의 개혁 개방 물결과 '한국취업 바람'으로 꿈에 그리던 조국으로 돈을 벌러 속속 모여들고 있다.

만주의 조선족 학교는 민족의 뿌리와 같은 존재다. 글로벌 시대 민족교육의 이름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다. 이 책은 조선족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우리나라 교사들에게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성찰과 발견의 기회를 제공한다. 1만5000원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