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파를 이겨낸 평범한 재일교포 여성의 위대한 이야기


올해는 한국이 일본 식민지에서 광복한 때로부터 71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나라를 침탈했던 일제, 위안부문제와 같은 전범에 대한 불인정. 한일관계는 진정으로 죄를 뉘우치지 않는 일본의 책임이다. 어쨌거나 한국과 일본의 역사 인식 차이로 서로에 대한 불신과 미움만이 쌓여가는 중이다.

새책 <운명은 현해탄을 건너서>(작가들·318쪽)는 식민지 시대 조선에서 태어나, 11살의 어린 나이로 일본으로 건너가 굴곡진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한 재일교포 여성의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다. 민족적 차별도 받지만 그와 반대로 일본인들의 도움도 받으면서 열심히 살아온 한 여성의 자전적 기록이다.

재일동포의 1세대들 중 많은 사람들은 식민지 시대에 강제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가서, 일본인들이 꺼리는 위험하고 힘든 일을 강요당하면서 살아갔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멸시를 받았으며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그나마 있던 일자리에서 알몸으로 쫓겨나 거리에 나앉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일본에 남은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판매가 금지된 물건을 팔기도 했다. 일부는 조총련에 가입해 북한에 충성을 하기도 했다.

▲ <운명은 현해탄을 건너서>
박옥희
작가들
318쪽, 1만4000원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성도 바꾸고 때로 다른 한국인을 '조센징'이라며 차별에 가세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이처럼 일본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한국을 버리고 일본인보다도 더 일본인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당시의 사회적 배경 속에서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책에 서술된 박옥희 여사의 삶은 이러한 재일동포의 부정적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조국의 해방을 위해 일본군과 싸운 이야기나 강제 징용에 끌려가 민족적 차별을 받으며 고생한 일 같은 역사적 시련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의 가난한 생활을 뒤로 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먼저 일본에 건너 가 노동을 하는 아들만을 믿고 일본행을 선택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일본에 건너갔던 10세의 어린 소녀. 역사의 세파가 몰려왔던 그 세월 속에서 생존을 위해 맞닥뜨려야 했던 준엄한 현실을 감당해 나갔던 한 여성과 그녀의 가족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되돌아보고 있다.

경상북도 안동 출신의 소녀는 고향에서는 결코 할 수 없었던 공부도 하고 배고프지 않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 일본에 건너간다.

그러나 곧 어머니와 헤어져 일본에 남게 된 소녀는 언니 부부와 생활하면서 삶의 고단함을 겪는 한편으로 오빠에게 떠밀려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게 된다. 게다가 시어머니와 시동생과의 힘든 시집살이를 하면서 네 아들을 낳고 키우며 갖은 고생을 겪는다.

몸은 비록 일본에 있으되 삶의 조건은 조선의 가부장적 제도의 속박에 갇혀 생활의 최전선에 나서야 했던 한 재일교포 여성의 삶을 책은 담담히 기술하고 있다.

네 아들을 키워 일본사회에 안착할 때까지 기록한 저자의 얘기에 귀 기울이다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배우고 알고 있던 내용과 같은 부합되는 부분도 있고, 때로는 '정말 이런 일이 있었을까?' 하고 의문이 드는 부분도 없지 않다.

6·25전쟁 때문에 시동생 부부에게 벌어진 슬픈 사건이나 북한에 건너간 시동생 이야기 등 이 책에는 한국의 현대사와 관련된 이야기도 더러 등장한다. 일본에 살고 있었지만 재일교포들은 한국의 어두운 역사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느끼든 이 책에 실린 내용은 한 여성이 자신이 걸어온 삶을 뒤돌아보고 쓴 있는 그대로의 글이기에 주목할 만 하다. 책은 묻는다. 당신은 왜 그렇게 바보같이 살았습니까? 1만4000원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