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에서 공 차고 놀던 아이… 국가대표 축구선수로
제2의 무대를 누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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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천수였다. 그라운드에서 브라운관으로 뛰어 들어간 그에게 박수와 함성은 이내 뒤따라 왔다.

은퇴 후 곧바로 방송국행 환승버스에 오르면서 비난의 차임벨이 울리기도 했지만 그의 말대로 '진실적'인 이천수의 모습이 안방까지 무사히 도착한 모양이다.

지난해 은퇴를 선언하고 유니폼을 벗은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이자 현 방송인 이천수(36)를 지난 3일 그의 모교 인천 부평동중학교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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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폼 벗고 새 옷을 걸치다

청바지에 야구점퍼를 입은 편안한 차림새가 어쩐지 낯설면서도 깨나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요즘요? 재밌어요." 어떻게 지내냐는 의례적인 질문에 그는 씩 웃어 보였다.

낯선 환경에 발 들인지 어느덧 3개월에 접어든 이천수의 얼굴엔 설렘과 긴장이 고루 묻어 있었다. 어느 정도 적응을 마쳤다는 그는 새 학기 입학한 신입생처럼 의욕이 넘쳤다.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흥미로워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즐겁고. 축구를 먼저 시작해서 오랜 시간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드렸지만 이제 또 다른 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세월의 흐름 따라 2002년 월드컵 스타의 영예는 흘러간지 오래고 그저 '동네 아저씨' 취급을 받기도 했던 그다.

"분명 그 꼬마는 저를 모르는 것 같은데 옆에서 엄마가 부추겨서 애한테 계속 같이 사진을 찍으라고 하는 거예요. 막 애 우는데.. 나 그때 참..."

몇 달 새 인기 예능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면서 그는 화제의 중심에 섰고 '이천수 재발견'의 연속이라는 평가를 끌어내고 있다.

"그렇게 못생기진 않았는데?" 그는 동네 꼬마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던지는 말 한마디도 달갑게 느껴지는 요즘을 한껏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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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유나이티드

 

 


"나는 축구할 운명이었나 보다"

유니폼을 벗고 처음 학교를 찾은 그를 가장 먼저 맞이한 건 봄날의 햇살을 잔뜩 머금은 듯 푸른 잔디구장과 훈련 중인 축구부 후배들이었다.

"중학교 입학할 때 제 키가 138cm였어요. 굉장히 작은 체구였죠. 저기 뛰고 있는 친구를 보니까 마치 어렸을 때 저를 보는 것 같네요."

한눈에 봐도 유독 키가 작은 한 학생을 보며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이천수는 인천 남구 주안동에서 태어나 대학 진학전까지 줄곧 인천에서 살았다.

"지금 문학 경기장 쪽. 처음에 거기서 살았어요. 문학산, 그 당시 돌산이 놀이터였죠. 거기서 매일 공을 차고 뛰어놀았어요."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가 온종일 뛰놀던 곳은 현재 문학 월드컵 경기장 자리다.

"처음부터 축구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 당시에는 학교에 축구부가 많지 않았거든요. 근데 전학 간 부평 초등학교에 축구부가 있더라고요."

단순히 공 차는 것이 좋아 축구부에 들어간 이천수는 몸집이 작아 상급생 형들에게 밀리기 일쑤였고 어릴 때부터 자존심이 하늘을 찔렀던 그는 지지 않기 위해 욕심의 끝을 향해 쉴 틈 없이 달렸다. 잽싸고 공격적인 축구선수의 탄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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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일 인천 부평동중학교에 방문한 방송인 이천수(36)가 축구부 학생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동네 골목대장은 내 몫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달랐다. 어린 시절 이천수는 소문난 말썽꾸러기였다.

"1층에 살았는데 집 현관문이 닫힐 틈이 없었어요. 저한테 맞은 애들이 엄마 손에 이끌려 들락거리기 바빴거든요"

그라운드의 악동은 계산동 골목에서도 이름을 날렸었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학교 6학년 형과 싸워 이길 만큼 당찼고 수틀리면 손가락을 물고 절대 놔주지 않는 맹수 같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니까요. 제가 생각해도 그땐 참.."

고소 안 당한 게 다행. 이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싸움도 잘하지, 공부도, 거기에 축구까지 잘하니 여자아이들한테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말하는 그의 어깨가 그새 3cm 정도 솟아 있었다.

천방지축 사고뭉치가 천재 축구선수로 불릴 수 있었던 건 동네 사람들의 자비가 한몫 했다.



내 고향 인천 그리고 월미도

이천수는 인천에서 보낸 시간만 20년이 넘는다. 십 대와 이십 대의 이천수에겐 축구가 전부였다. 일찍이 운동을 시작했던 그는 못해본 것도 많았다.

"다시 시간이 주어지면 공부를 하고 싶어요. 제가 암기력이 좋거든요. 그래서.. 법(law) 공부를 ..검사를.. 해볼.."

그는 못하는 소리가 없었다.

질풍노도의 시기, '울시' 티셔츠에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바지를 입고 부평 시내를 활보할 시간도 그에겐 주어지지 않았지만 훈련이 없는 날이면 늘 찾았던 곳이 있다.

월미도. 그에게 월미도는 각별한 장소다. 월미도에서 영종도까지를 배 타고 가던 시절 얘기다.

"한참 운동에 열중하던 고등학교 때, 집이 어려웠어요. 아버지가 노조위원장 출신이거든요. 다니시던 회사가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회사랑 8년간 싸우셨어요. 직원들 퇴직금이랑 다 받아 내시겠다면서요. 가정형편이 점점 안 좋아지면서 어머니도 바깥일을 하시게 됐어요. 그때 형이 대학을 갈 시기였는데 포기하고 일을 시작했어요."

2살 터울인 형이 생업전선에 뛰어들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자 그는 왠지 모를 미안함에 시달렸다.

"형은 월미도 가서 배를 탔어요. 배 안에서 먹고 자면서 일을 했죠.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운동도 힘들긴 했지만 어쨌든 전 제가 선택한 거였고. 형은 달랐죠."

이천수는 그런 형이 늘 마음에 걸렸다.

"어느 날은 배를 타다가 바다에 시체가 뜬 걸 봤다고 하더라고요. 오랜 시간 배를 타면 사람이 미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겁이 났어요. 일하면서 무릎도 다치고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는 운동이 없는 날마다 형에게 찾아갔다. 버스를 타고도 한참을 가야 했지만 형과 만날 수 있는 짧기만 했다. 그렇게 꼬박 3년.

"축구 하면서 전국 곳곳, 세계 여러 나라도 다녀봤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한 곳을 가본 적은 없거든요. 인천 하면 월미도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나요."

그의 월미도엔 디스코 팡팡도 유람선도 없었지만 형과의 추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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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일 인천 부평동중학교에 방문한 방송인 이천수(36)가 축구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악동' 이천수는 자취를 감췄다

그라운드의 악동. 혀컴. 사랑과 관심의 대가로 질타도 피할 순 없었다. 이천수는 사뭇 비장했던 과거와 달리 줄곧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지난 사건사고들에도 이제는 초연한 모습이다.

"다 아시잖아요"로 시작한 그의 과거 이야기는 "그래도 '음주운전' 그거라도 안 한 게 어디냐"로 결론이 났다.

하도 문지른 사포는 이제 결마저 고와졌다. 제 몸에 난 상처와 주변에 낸 흠집을 수습하는 일은 오롯이 그의 몫이었다. 외로웠고 그래서 더 모나게 굴기도 했던 젊은 날의 패기는 이제 그 자취를 감춘 뒤다.



그를 변화시킨 건 팔할이 '가족'

그에겐 아들 사랑에 '2002호' 세대주를 자처하신 부모님과 둘도 없는 형. 그리고 사랑하는 4살 난 딸아이와 인생의 동반자 아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 그는 대화중에도 독감에 걸려 닷새째 앓고 있는 딸 주은이 걱정을 연신 해댔다.

"딸이 아픈데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차라리 제가 대신 아팠으면 싶고.. 제 아이와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건강하게."

말하는 그의 작은 눈에서 슬픔 같은 것이 새어 나오는 듯했지만 출구를 잃은 듯 이내 증발했다.

"이제 좀 컸다고 말도 많아지고. 요새 아프다고 짜증이 늘었어요. 휴..'피존'이에요. 피곤한 존재... 그리고 아버지도 그래. 형한테 집을 물려준다고 했대요. 아 그럼 나는.. "

가족에 대한 애정을 농담 섞인 말로 대신하고는 지긋이 웃어 보이는 그는 참 유쾌한 사람이었다.


지혜도 없었고, 자비도 없던 경기는 끝났다

점심에 라면을 먹고 왔다는 그는 여유까지 한 모금하고 온 모양이다. 3시간 동안 그가 뱉은 말들엔 가식이 없었다. 패스 없이 단독 드리블로 이어지는 그의 말재간에 중간중간 펜을 놓고 지켜봐야 했다. 초지일관 솔직함이 때론 독이 될 때도 있었지만 그에겐 분명 '진실성'이 있었다.

이천수의 전반전은 끝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축구 인생이었다. 옐로카드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경기 퇴장도 불사했던 그였다.

그라운드를 누비며 좌중을 압도했던 열정 많은 플레이어. 예측 불가능한 그의 움직임이 어떤 역전을 불러일으킬지. 그가 새 무대에서 펼칠 후반전이 기대되는 이유다.

 

/김혜민 기자 khm@incheonilbo.com

 

 

 

<동영상> 선배 이천수와 부평동중학교 축구부 후배들의 즐거운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