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문화체육부 부국장
▲ 김진국 문화체육부 부국장

"꼬마열차가 덜컹거리며 바다 위 소래철교를 천천히 지날 때면 마치 커다란 장난감을 타고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어. 기관사 아저씨도 동네 삼촌처럼 정겨웠고, 네모난 열차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그걸 가려주는 빛바랜 핑크색 커튼도 생각 나…" 4년 전, 인천을 찾은 연극인 박정자 씨는 고향을 이렇게 회상했다. 소래에서 태어난 박 씨와 가족에게 '수인선'은 대중교통의 전부였다.

"열차가 어찌나 아늑한 지 가족이 함께 타고 가면 꼭 소풍가는 거 같았어. 근데 아침에 타면 콩나물시루처럼 사람들이 넘쳐났지. 나 같은 꼬마들은 숨이 막혀 컥컥대기도 했지만 그 것도 재밌었어요." 가수 이용은 어린 시절, 외가가 있는 수원에 가기 위해 엄마 손을 잡고 자주 수인선에 오르곤 했다.

'수인선'은 그러나 낭만의 철도라기보다는 생존의 철도에 가까웠다. 사진가 최병관은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쇠줄 같은 소래철교를 어머니는 곤쟁이젓갈이 가득한 무거운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곡예사처럼 건너다녔다'고 저서 <어머니의 실크로드>에서 고백한다. "젓갈 사세요~오, 젓갈 사세요~오." 파르스름한 새벽부터 소쩍새가 우는 캄캄한 밤까지, 그의 어머니는 수인선 철길을 따라 걷고 또 걸으며 외쳤다.

달리는 열차에 사람들이 매달려 가는 모습도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자리가 꽉 차면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기차 밖에 매달려서라도 학교에 가야 했다. 열차가 용현동 '똥고개'에 이르면 학생들은 철로에 뛰어내리기도 했다. 언덕에 다다른 열차는 낑낑대며 더 이상 나아가지 못 했고, 선생님의 무서운 얼굴을 떠올린 학생들이 하나 둘 열차를 이탈한 것이다. 조금은 가벼워진 열차가 겨우겨우 언덕을 넘어갔다. 여기까진 광복 이후의 풍경이다.

1937년 첫 기적을 울린 수인선은 일제가 식민지 침탈을 위해 놓은 철도였다. 일제강점기 이 열차 안엔 일본인들에게 공급할 쌀과 소금이 넘쳐났다. 소래·남동의 염전과 여주·이천 등지의 쌀이 수인선에 실려 인천항으로 수송됐다. 광복 이후 이 기능이 사라지고, 교통수단이 많아지며 이용객은 점차 줄었다. 1995년, 수인선은 결국 58년간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다.

폐쇄한 지 21년 만인 오는 27일 수인선 일부가 개통한다. '송도-인천' 역 7.3㎞ 구간이다. '오이도-송도'역 구간은 2012년 열렸고, '한대-수원'역 19.9㎞ 구간이 마무리되는 내년이면 수인선 전 구간을 열차가 달릴 것이다.

'수인선의 부활'로 인천시의 올 시정방향인 '가치재창조'가 하나 이뤄진 셈이다. 거대담론이 설정됐으니 미시담론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는 이제 역을 거점으로 한 인천가치재창조가 가능한 문화콘텐츠 생산을 고민해야 한다.

새롭게 개통하는 인천·신포·숭의·인하대역만 놓고 보자. 인천역을 나와 횡단보도만 건너면 '중국인거리'다. 사람들은 여기서 이국적 풍경을 보는 '눈맛'과 중국요리를 맛보는 '입맛'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차이나타운에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요즘 신포동엔 갤러리, 카페와 음식점 등이 눈에 띄게 늘었다.

고색창연한 근대건축물들과 거리가 품은 이야기들. 인천역과 함께 신포역은 인천의 정체성을 가장 많이 간직한 장소다. 그렇지만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다. 공격적 마케팅과 꾸준한 홍보·피알(PR) 전략으로 '이야기'를 찾아내고 알려줘야 한다.

쇠락했다고는 하지만 숭의역에선 여전히 참기름 짜는 냄새가 풍겨 나오고, 몇 안 되는 곡물상회들이 가게 앞에 갖가지 곡물을 쌓아놓은 채 단골들을 맞고 있다. 옛 수인선이 오갈 때 이곳엔 '장터'가 서서 인천, 수원 사람들이 한바탕 흥정을 벌였다. 축제는 거창한 세리머니나 잘 연출한 이벤트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많이 모여 한바탕 즐기면 그게 좋은 축제다. 숭의역엔 인천과 경기사람들이 어우러지는 '축제와 화합의 장터'가 부활하면 좋겠다.

인하대역은 하와이이민자들이 모아준 독립운동자금으로 세운 민족사학 인하대학교 '정문'에 위치한다. 인하대는 학생들이 먹고 즐기는 장소가 온통 학교 뒤쪽에 몰린 '후문문화'가 발달한 학교다.

이제 정문을 중심으로 2만여 학생과 3971세대 아파트주민들을 즐겁게 할 문화를 생산해야 한다. 인하대 후문이 서울 대학로와 비슷하다면, 정문은 홍대 앞처럼 밴드뮤지션들이 즐비한 대중문화의 산실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산업혁명을 일으킨 증기기관차처럼, 인천의 가치재창조를 향해 달리는 수인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