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현 인천부현동 초등학교 교사
▲ <연이동 원령전> 김남중 저 상상의힘 10500원

최근 흥행 중인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는 서울을 무대로 가톨릭의 구마 의식이 세부적으로 재현된다. 한국 영화에서 서구적인 구마의식, 즉 귀신을 쫓는 행위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어 영화를 흥미롭게 보았다.

그럼에도 번화한 도시 명동의 휘황한 거리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구마의식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것은 아마도 영화에서 나타난 악령의 실체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특수한 상황과 어떠한 구체적 연관도 맺지 않은 채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인간의 죄악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서울이라는 특수한 시공간에서 구마의식이 행해질 수밖에 없는 구체적 이유가 뒷받침되지 못하는 점은 아쉬웠다.

김남중의 동화 <연이동 원령전> 역시 서울을 배경으로 한 귀신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서울의 연이동이라는 공간에서 초등학교 6학년인 무진이와 용도가 원령(원한을 품은 영)들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에 대한 미스테리를 추적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서는 서울 연이동이라는 공간이 특수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그런데 그 이유는 서사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암시되고 밝혀진다. 이것을 재빨리 눈치 채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사실과 작가에 대한 약간의 정보가 필요하다.

가령 이 이야기의 앞 부분에서 "연이동 장군님"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이것을 작가 김남중이 <기찻길 옆동네>를 비롯한 동화에서 광주항쟁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해 왔다는 것과 연결해 보면, '연이동'은 '연희동'을, '장군님'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암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사의 흐름으로 보아 독자는 한동안 이러한 암시를 눈치 채기 어려워 보인다. 왜냐하면 이야기의 전반부는 역사적인 사실과는 동떨어진, 신비롭고 미스테리한 귀신들의 존재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오컬트적인 소재와 더불어 등장인물인 무진이와 용도, 그리고 영지 사이의 삼각관계가 에피소드의 틈새를 메우고 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는 언뜻언뜻 얼비치는 역사적 사실과의 연관성을 쉽게 인식하기 어렵다. 즉 역사동화라는 장르의 특성은 미스테리와 연애 서사라는 두 기둥에 잠시 가려져 있다가 나중에서야 그 정체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갑자기 어려워진 형편 때문에 1년 동안 임시로 연이동의 연립주택에서 살게 된 무진이는 새로운 동네에서 영지라는 여자 친구를 만나고 좋아하게 된다. 연이동에서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이상한 사람들을 계속 관찰주인공 삼각관계 축으로 미스테리 해결 '판타지 역사 동화'

하던 무진이는 자신처럼 그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영지와 특별한 친구가 된다. 그리고 이 두 친구 사이에 대형교회 목사님의 손자 용도가 합류하게 되면서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이야기는 이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사람들의 존재와 아웅다웅 겨루는 삼각관계를 축으로 전개된다. 특히 무진이와 용도는 영지를 둘러싼 삼각관계에서는 경쟁자이지만 원령들과 관련된 미스테리를 해결하는 일에 있어서는 협력하는 이중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그들이 알게 된 미스테리란 "수많은 사람을 죽인 한 남자에 대한 복수"를 위해 "혼이 자유로워지는 새벽"에 원령들이 나타날 것이며 수많은 사람을 죽인 그 남자가 바로 "연이동 장군"이라는 것이다.

원령들이 오랜 시간을 기다렸지만 이승에서는 장군에 대한 법의 심판과 집행이 이루어지기는 커녕 많은 사람들이 원령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잊어버렸고 장군은 여전히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다.

그래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어 직접 장군을 데리러 온 원령들에게 무진이와 용도는 자신들이 그것을 제대로 알고 기억하겠다고 다짐하며 그들을 달랜다. 제대로 알고 기억하기. 역사적 진실과 그 속에서 희생당한 이들에 대해 다음 세대가 할 수 있는 이 당연한 단순한 일들을 당부하기 위해 작가는 판타지의 형식 안에서 여러 종교적 의식들을 동원하고 초자연적인 장면들을 형상화했다.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는 종교적 의식(儀式)을 따르는 것으로 구마행위가 마무리될 수 있었지만 『연이동 원령전』에서는 무진이와 용도가 한 약속들이 원령들을 달래고 위로하여 마침내 그들을 되돌려 보낼 수 있었다.

이러한 약속들이야말로 장군이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서울, 연이동에서 필요로 하는 역사적 의식(意識)이며 작가가 아동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었던 전언이 아닐까 싶다.

역사를 바라보는 단일한 관점과 다양한 관점에 대한 논쟁이 한창인 요즈음, 조금은 색다른 역사동화를 읽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아울러 같은 소재로 쓴 김남중 작가의 다른 동화들과 함께 견주어 읽으면 이 책만이 지닌 개성을 확연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남지현 인천부현동 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