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둥 평화선언' 60주년 역사·현재적 의미 곱씹기
▲ 황해문화- 2015년 겨울호

'광복 70년, 한일협정 50년' 연속기획 日 천황제·韓 국가보안법 조명
표절 논란 문학계 진단 … 인천 중·동구 도시재생사업 문제점 지적도

정통 계간지 <황해문화> 2015년 겨울호(통권 89호)는 '반둥 평화선언'에 비친 아시아에 천착한다. '반둥 평화선언'은 지난 1955년 4월18일부터 4월24일까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29개 독립국 대표들이 인도네시아의 반둥에 모여 양 대륙과 세계의 현안을 논의한 국제회의에서 채택한 안건을 가리킨다.

올해 반둥 평화선언 60주년을 맞아 인도네시아 정부는 반둥회의 60주년 기념 회의를 준비했고, 지난 4월22일~23일 열린 정상회의에선 '반둥 메시지 2015'라고 명명한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무려 60년 만에 반둥 선언의 의미를 곱씹은 셈이다.

올해 회의 역시 아시아·아프리카 두 지역이 직면한 빈곤과 격차 해소, 다극화 세계의 형성을 지향하는 방침을 표명했다. 이번 성명이 60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전 지구화와 지역화시대 재중심화되는 리오리엔트 아시아와 거대 시장이라는 잠재력을 보유한 아프리카와의 경제연대 강화로 쌍방의 번영에 목표를 둔다는 사실이다. 강대국과 경제, 군사 등 어떠한 동맹도 맺지 않겠다는 비동맹회의의 정신을 돌이킬 때 그 경제적 경도의 함의로 인해 많은 고민을 안겨준다.

<황해문화> 89호는 질문한다.

'반둥 60주년이 갖는 역사적·현재적 의미는 무엇인가. 경제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아프리카의 연대는 과연 구미 중심, 미소 냉전체제, 미국 중심, 그리고 G2의 오늘 어떤 세계상을 표상하고 있으며, 그 미래지향은 무엇인가.'

<황해문화>는 이같은 문제의 심연에 다가가기 위해 아시아를 화두로 끄집어낸다. 여기서 '아시아' 혹은 제3세계로 통칭되는 지역범주는 고정된 지리적 실체가 아니다. 지적, 사상적 기획일 수도 있고, 현실적인 국제적 레짐(regime)일 수도 있으며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감각(sensation)일 수도 있다. 아시아나 제3세계 문제를 다룰 때 기존의 이론과 개념이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다중들의 실천과 욕망, 정동(affect) 등을 통해 아시아를 다시 문제화하기 위함이다.

60년 전의 반둥 아시아가 국민국가의 연대 틀, 새로운 세계지배질서로서의 냉전의 체제화에 대응하고자 하는 국가 간 체제를 지향했다면, 오늘의 아시아는 복합적 상호의존성 속에서 아시아 태평양체제와 G2로 부상한 중국이 구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와 같은 세계재편의 기획을 가시화하고 있다.

다른 한편 1국 주도의 세계체제에 구속되거나 관리되는 삶이 아닌, 보다 개방적이고 탈경계적인 공간화 실천으로 제도와 일상의 재편을 다른 아시아 혹은 세계를 구도하는 맥락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 또한 포착되기 때문이다.

그 비동맹 정신의 새로운 구현맥락을 '아시아의 아시아들은 건재한가'란 주제가 이번 <황해문화>의 특집이다.

# 아시아의 아시아들은 건재한가

서재정(일본국제기독교대학 상급부교수)은 '한반도와 아시아:식민, 냉전, 전 지구화의 중첩과 지역화'란 제하에서 미국 주도로 구축된 동북아시아 전후체제가 전 세계적 수준에서 냉전 분단에 동북아시아 분단 및 한반도 분단이라는 3중의 모순이 중첩돼 유럽보다 더 강고한 분단구조를 형성한 문제의 역사성을 환기한다.

이남주(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중국의 서진전략과 일대일로―아시아 협력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는가?'란 글에서 중국의 일대일로 기획이 새로운 지역질서를 열어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한국사회가 남과 북의 대립을 협력, 한반도 내부의 재균형과 분열의 극복을 실현시켜 새로운 아시아 협력의 주역이 될 것을 역설한다.

신현준(성공회대 HK교수)의 '인터아시아 시각에서 아시아 대중음악을 다시 조망하기'는 케이팝(K-pop), 제이팝(J-pop)과 칸토팝(Cantopop) 등이 십수 년 동안 각각의 일국적 회로(circuit)를 통해 순환하다가, 중첩·교차하면서 글로벌한 아시안 팝(global Asian pop)을 주조해낸 국면, 그 영향, 곧 아시아 팝의 현존을 확인하면서 대중음악에서 '아시아' 호출의 의미를 제기한다.

김소영(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교수)은 중앙아시아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 고려인 영화인을 포함하고자 하는 광역의 '한국' 영화사 연구자, 그리고 인터아시아 문화연구의 편집진으로 '중앙아시아'에 대한 담론 공간을 열어 젖힌다.

# 광복 70년, 한일협정 50년  - 두 문제국가 사이에서

<황해문화>가 지난 여름호부터 연속기획으로 준비한 '해방 70년, 한일협정 50년 - 두 문제국가 사이에서'라는 제목의 기획 두 번째로, 천황제와 국가보안법 체제라는 강제된 국가형식을 짚어본다.

박진우(숙명여자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는 '천황제와 일본 군국주의'란 글에서 아베 내각 출범 이래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대국화 행보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군사대국화 행보에 대해 흔히 '군국주의 부활', 또는 '황국사관 부활'이라고 비판하지만 정작 그것이 어떤 점에서 부활인지, 그 구체적인 내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점을 지적한다.

오늘날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과거와 같이 천황제와 결합하는 형태의 군국주의로 회귀할 것인가,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의 지주 역할을 했던 천황제가 부활할 것인가란 물음의 답을 구하기 위해 근대 천황제가 창출되는 과정과 그것이 군국주의와 어떤 관계에서 전개되었는지를 살펴본다. 또 패전 후 군국주의가 소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 핵심에 자리하고 있던 천황제는 폐지되지 않고 존속됐으며 그것이 어떤 모순과 문제점을 잉태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오동석(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분단체제와 국가보안법'에서 대한민국은 분단체제와 국가보안법체제, 군사독재체제로 인해 민주공화국의 예외상태에 놓여 있다고 진단한다.

지배세력은 분단 상황을 폭력적으로 확장해 민주공화국이 온전하게 작동하지 않는 분단체제를 구축했고, 인간의 사상·표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면서 언제든지 비판세력을 제거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체제를 확고히 했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헌법 위에 군림하면서 분단 상황을 악용해 민주공화국의 예외적인 체제로서 분단체제를 구축했다. 지배권력은 분단을 남북한의 적대적 관계로 체제화하고 고착화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통일 이전에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하기 위한 첫걸음이며 분단을 이유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않을 권리가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다.

#무게감 있게 읽어야 할 글들

진태원(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은 '몫 없는 이들의 몫―을의 민주주의를 위하여'에서 최근 한국사회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용어 중 하나인 '을(乙)'이라는 말에 화두를 던진다. '을'이라는 말이 사회적 약자, 몫 없는 이들 일반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잡게 된 이유를 지그문트 바우만이 제기한 '인터레그넘' 문제와 정치적 주체에 관한 논의에서 찾는다.

특히 그는 우리말에 정치적 주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용어 또는 개념이 부재하다고 분석한다. 그는 을들의 자기 지칭으로서의 을이라는 표현은 을의 민주주의가 몇 가지 중요한 쟁점을 포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한다.

비평에서도 읽을거리가 많다.

오길영(충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은 '한국문학의 아픈 징후들―표절과 문학권력 논란에 대하여'에서 한동안 한국문학계를 뜨겁게 달군 표절과 문학권력 논란을 설명할 수 있는 준거 개념으로 '징후적 독법'을 선택하고, 한국문학계의 문제들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민운기(스페이스빔 대표)는 인천의 중·동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도시재생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진정한 도시 '재생'은 대안적인 삶의 가치와 형태를 모색하는 활동이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전병유(한신대학교 정조교양학부 교수)는 '박근혜 정부 노동개혁 평가와 과제'에서 2014년 하반기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노동개혁 의제를 바탕으로 이 정부가 제시한 노동개혁의 주요 쟁점들을 설명한다. 또 비정규직화로 인한 불안과 차별의 심화, 대-중소기업간 근로조건의 격차 완화라는 노동의 이중화 문제를 지적한다.

아울러 인천문화지리지에선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유명세를 떨친 소설가 김중미의 어린 시절과 인천을 엿볼 수 있으며, 1년 만에 다시 글을 짓기 시작한 노동소설가 이인휘와, 제22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하명희의 신작소설도 맛볼 수 있다. 새얼문화재단, 404쪽, 9000원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