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해와 달이 만들어졌을 때이다. 달이 신에게 말했다. “한 부엌에 두 요리사가 있을 수 없듯 하늘에 두개의 빛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신이 나를 의심하느냐면서 그 빛이 약하도록 벌했다. 유대인 어린이들에게 교육용으로 태양이 있는 낮에도 달이 떠있을 수 있음을 설명하는 이야기이다.

 그런가하면 이런 이야기도 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 에덴에서 쫓겨날 때 태양과 나무 그리고 우주만물이 슬퍼 울었다. 그러나 달만은 울지 않고 웃었다. 그를 보고 신이 달에게 벌주어 한달 내내 빛을 주지않고 달마다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안되도록 했다.

 내일은 정월 대보름-달맞이 하는 날이다. 저녁을 일찍 마치고 동녘으로 두둥실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려 달불을 사르고 소원을 빈다. 보름달로 치자면야 일년에 열두번 뜨게 마련인데 같은 달을 두고도 사람들은 정월 보름달과 한가위 추석달이 더욱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달속의 얼룩을 보고 옥토끼가 계수나무 밑에서 불사약을 빻고 있다고 여긴다.

 그에 비해 서양의 상상력은 조금은 살벌하다. 청교도의 전설로 그것은 사람의 얼굴인데 일요일 교회 길목을 막다가 유배간 노인이라고 한다. 또한 양배추 도둑이거나 예수를 배신한 유다라고도 한다. 케냐의 마사이족은 남편인 태양과 싸운 입술이 부풀고 한쪽 눈이 없는 여인이라고 한다. 하긴 중국의 전설은 남편의 선약을 훔친 항아가 도망가 숨었다고도 하고 신을 노하게 한 오강이 나무를 베느라 영원히 도끼질을 하고 있다고 전한다. 아무튼 우주인이 남긴 발자국을 생각하기 보다는 훨씬 푸근하다.

 한가지 더 달을 보면서 느끼는 정취는 경포대에서의 술잔에 비친 달그림자이다. 즉 달이 하늘에 뜨고 바다에 뜨고 호수에 뜨며 술잔에 뜨면 정인의 눈망울에도 뜬다 함이다. 중국의 시성 이태백의 풍류 보다 몇배나 더한 심성이다. 그는 기껏 뱃놀이 중에 달속에 살겠다며 달그림자 비친 강물에 뛰어 들지 않았는가. 오늘과 내일 저녁 떠오르는 달을 보면서 잠시나마 상상의 나래 속에 잠겨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