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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어느 무더운 여름날,
시골 길을 내달리고 있는 버스 한 대.

뜨거운 태양에 달궈질 대로 달궈진 버스는 찜통 그 자체였다.
한참을 달리던 버스가 가로수 그늘 밑을 지나가던 그때,
젊은 군인이 손을 흔들고 서 있었다.
군인을 본 버스는 군인 앞에 멈춰 섰다.

큰 가방을 안고 씩씩하게 버스에 올라탄 군인은
버스 맨 앞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출발해야 할 버스가 출발하지 않는 것이었다.

승객들이 빨리 출발하자고 재촉했지만,
버스 기사는 “저기…”하며 눈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모두가 버스 기사의 눈을 따라 시선을 옮겼는데,
멀리서 젊은 여인 한 명이 버스를 향해
논둑을 열심히 뛰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저렇게 열심히 뛰어오는데,
버스가 출발하면 얼마나 허망할까 하는 생각에
승객들은 여인을 기다려 주기로 했다.

그 사이 승객들은 버스에서 내려
개울가에서 세수도 하고 바람을 쐬기도 했다.
그러길 몇 분 후, 여인이 도착했다.
그런데 여인은 버스를 타지 않고,
버스 주변만 서성이는 것이었다.
버스 기사가 빨리 타라고 소리쳤지만, 여인은 버스를 살펴보더니
이내 군인을 발견하곤 아쉬움과 사랑 섞인 표정으로
“몸 성히 잘 가이소”라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젊은 군인도 “걱정 마래이”라며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잡은 여인의 손을 아쉬운 듯
놓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승객들은
불평이나 짜증보단 너나 할 것 없이 한바탕 유쾌하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버스는 그렇게 슬픈 이별을 뒤로하고
먼지를 일으키며 뜨거운 태양 아래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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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이 자주 쓰시는 말씀 중,
“세상 참 좋아졌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더운 여름 버스에는 언제나 에어컨이 켜져 있고,
정류장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버스가 들어옵니다.
조금만 시간이 지체돼도 여기저기서 불평이 터져 나오고,
다음 버스를 타기를 종용합니다.

시간이 금인 세상에
빠른 교통수단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긴 합니다.
어르신들 말씀대로 예전에 비하면 정말 좋아진 세상입니다.

그러나 가끔 버스 안 승객들의 표정을 보면
늘 긴장돼 있고, 경직돼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세상이 점점 빨라지고 편리해지는 것이 나쁜 일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다만 조금 불편해도 가끔은 사람들간의 정으로 움직이는
무언가가 그리울 때도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 오늘의 명언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외모나 조건 때문이 아니다.
그에게서 나와 똑같은 영혼을 알아보았기에 사랑하는 것이다.
– 톨스토이 –


/글·그림 '따뜻한 하루'